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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Dec 16. 2024

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논쟁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지난해 10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되면서 법적 지위를 얻은 디지털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격하’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날달 28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교과서의 정의 및 그 범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로 규정하도록 명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용할 수 있는 교육자료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에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두 번째 사항이다. 


이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로 넘어갔고,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2025년부터 초중학교에서 사용 예정이던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개정안에 나와 있는 디지털교과서 2025년 도입 반대 이유는,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면 학생의 문해력 하락, 스마트 기기 중독,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막대한 예산 투입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도입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고민정 의원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2024년 7월, 초·중·고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학부모 인식 조사」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CG) [연합뉴스TV 제공]


조사 결과 학부모의 82.1%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 절차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학부모 중 절반은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는 사실을 잘 모르거나 들어본 적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디지털교과서에 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답한 학부모들이 많은 이유 역시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응답자 3명 중 1명(33%)은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만 잘은 모른다’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24.4%는 디지털교과서를 ‘들어본 적 없다’라고 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하면 아이들이 더 스마트 기기에 중독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교육부는 초중학교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해 법적 제도적 준비, 시스템 구축, 교육자료 마련 등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국민 또는 대학부모 대상 홍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입장에서 모든 부모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언론을 통한 홍보자료 배포 및 배경 설명이 지금까지 실시된 정부 부처의 일반적인 대국민 홍보 방식이다. 여기에 관계자 공청회, 전문가 토론회, 교육단체 세미나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모든 학부모의 정보 습득 정도가 동일하기가 쉽지 않다.  


또 교육부는-다른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로- 중요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학부모들의 동의를 받거나 충분한 정보 제공 후 설문조사를 거쳐 실시하지 않는다. 특정 지역에 쓰레기 소각장 설치와 같은 지역민들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이 아니고 모든 국민들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정책의 경우 중장기 계획에 의거 실시하게 된다. 행정의 장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전문가 및 관련 기관 협의 후에 조정 등을 거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가능한 한 여러 채널을 통해 최대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전 준비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다르게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AI 디지털 교과서 영어 최종 합격본의 시연 행사에서 관계자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의 주요 기능을 토대로 참여형 수업 및 학생 맞춤교육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실제로 교육부는 내년 새 학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백승아 의원이 공개한 ‘2025년 AI디지털교과서 대상 학교 디지털 인프라 1차 진단 결과’에 따르면, 전체 진단 대상 학교 1만 2,090교 중 무선 속도 개선이 필요한 학교는 1,452교(26.6%), 1차 점검 완료 6749교 중 디바이스 보급이 되지 않은 학교는 1,720교(25.5%)로 나타났다. 인프라 구축도 아직 마무리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교사들이 테스트할 환경도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또 지난 8월 예정이었던 AI 디지털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해 학교에선 다음 달 중순쯤이나 실물 디지털교과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계속 미비점 보완 중이며 당초 계획대로 차질 없게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은 교육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되면 계획이 사실상 중단된다. 그러나 교육부가 세심하게 준비 못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해도 좋지만, 교육의 중장기 정책을 법률로 지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지금 어린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는 기성세대가 살았던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고 그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 서책형 교과서로는 미래를 준비하기 힘들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정안 통과가 아니라 디지털교과서가 계획대로 도입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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