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 이희진 쓰고 모아북스에서 내다
글쓴이는 무슨 유명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탤런트나 배우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다. 월급을 모아 일 년에 한 번 정도 여행을 떠나는 보통 사람이다. 여행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여행 갈 생각에 일상의 스트레스를 참고 견딘다.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 해방감을 느끼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다시 시작되는 일상을 기꺼이 준비한다. 계절의 순환이 생명체에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글쓴이 역시 떠나고 돌아오는 여정이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다. 그래서 떠나야 하고 돌아오면 다시 그리워한다. 이 책 안에는 그런 그리움을 여행지 풍경과 함께 수채화처럼 묘사한 글들로 가득 차 있다. 과장도 없고, 기교도 없다. 남프랑스 어느 조그만 시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해 질 녘 풍경처럼 조용하고 아름답다.
몇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때였다. 거센 바람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가을로 무르익은 황금빛 광활한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들판은 엄마 품처럼 두 팔을 크게 벌려 따뜻하게 나를 감싸안았다. 목구멍까지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 몸의 물기가 모두 빠져나가도록,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P 75. 스페인 세고비아.
우리 모두 그런 순간이 있다. 처음 보는 풍경이 갑자기 내 안으로 푹 들어와 나를 압도해서 주저앉게 할 때가 있다. 저자에게는 세고비아 평원이었다. 세고비아를 가본 적이 없지만, 글쓴이의 그 느낌만은 온전히 전달되고 있다. 나에게 세고비아는 어디였을까.
오스트리아의 조그만 호숫가 마을, 장크르 길겐. 오래된 교회 앞마당에 꽃과 화분으로 꾸며진 묘지를 보고 글쓴이는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느끼고, 아빠가 무심코 중얼거린,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 유언을 기억한다. P. 186 오스트리아 장크르 길겐.
삶과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다. 저자는 철학자의 잠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느 시골 교회 앞 묘지에서 삶의 의미를 문득 느끼고 깨닫는다. 여행은 이렇게 움직이는 철학서이기도 하다.
뜨겁던 태양도 한풀 누그러져 체팔루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나의 타는 가슴을 식혀준다. 잔잔한 파도는 내 발끝을 토닥인다. 부드럽고 푹신한 모래 위로 천천히 누워본다. <시네마 천국>이 아닌 진짜 천국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43. 이탈리아 체팔루
이정표를 제대로 못 봐, 계속 실망하고 낙담하면서 잠시 쉴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안내 표시를 따라가 마침내 만난 이탈리아 체팔루 -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인 그 마을- 를 보고 나서 지은이는 진짜 천국을 보게 됐다. 글쓴이가 찾아낸 그만의 천국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 모두 자신만의 천국을 발견한다.
글쓴이는 애써 설명하지 않고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계속 듣다 보면, 그녀와 함께 유럽 어느 소도시를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그녀는 사라지고, 이제 세고비아로 향하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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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낯선 곳에서는 늘 내가 낯설다
01 행복, 가봐야 볼 수 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튀르키예 이스탄불
쉼표가 있어야 마침표도 찍을 수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행복은 늘 내 안에서 온다: 벨기에 겐트
지친 영혼이 쉬어 갈 안식처를 찾다: 스위스 몬타뇰라
느림의 행복을 팝니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02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있다
누구나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스페인 세고비아
오늘의 시련은 내일의 희망이다: 이탈리아 마테라
사람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겪는다: 룩셈부르크 비안덴
인생은 사인곡선을 그린다: 이탈리아 친퀘테레
고통을 넘어서는 힘은 나에게 있다: 스위스 체르마트
땅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시작된다: 포르투갈 포르투
그 고통 또한 지나갔다: 프랑스 파리
어제 없는 오늘이 어디 있겠는가: 헝가리 부다페스트
03 상실은 성장의 다른 이름
파도에 맞서면 파도를 이기지 못한다: 포르투갈 나자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 이탈리아 알베로벨로
신의가 밥 먹여준 역사의 상처: 스위스 루체른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이탈리아 볼로냐
왜 남의 말에 휘둘리며 사는 걸까: 프랑스 마르세유
바람직한 리더상을 묻는다: 스페인 그라나다
나 또한 한때는‘요새 애들’이었다: 프랑스 니스
일곱 색깔이 모여 하나의 무지개를 만든다: 몰타 발레타
04 내 마음의 거울
기대와 현실의 거리를 좁히는 법: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우리는 지구에 잠시 소풍 온 것이다: 오스트리아 길겐 & 할슈타트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간다면: 시칠리아 팔레르모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상대방의 얼굴은 내 마음의 거울이다: 크로아티아 시베니크
작지만 존중받는 큰 차이는 따로 있다: 영국 런던
05 그래도 나는 떠난다
내가 혼자 떠나는 이유: 그리스 미코노스
의 진짜 적은 내 안의 나: 시칠리아 체팔루
운명적 사고 vs. 메타 인지: 그리스 델포이
인생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포르투갈 코임브라
어제와 오늘이 같다면 미래도 그렇다: 그리스 수니온곶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스페인 말라가
신념을 지켜 사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 그리스 산토리니
미치도록 간절히 살아보았는가: 독일 뷔르츠부르크
에필로그 끝나지 않을 여정, ~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