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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SNS를 이용하는 두 방식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최근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국 유학 신청자의 비자 발급을 위한 인터뷰 진행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정부가 외국 유학생 비자 발급을 엄격하게 심사하기로 발표한 후 일어난 일이다. 트럼프는 미국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이 많아 미국 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힘들고, 외국인 유학생들을 보낸 나라들은 미국과 미국대학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와 같이 결정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인의 SNS를 검열하는 국가에 대해 비자 발급을 제한할 것이며,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그 외 나라 학생들의 경우 SNS 심사를 통해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적합한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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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체적 실행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미국 정부의 SNS 검열 요구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의 후에는 자신의 SNS에서 미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나 표현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기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유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 계정에 있는 ‘적절치 못한’ 표현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계정 자체를 없애야 한다. 미국 유학을 위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가장 리버럴한 나라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SNS를 검열하겠다는 트럼프의 발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반민주적 행태다. 이런 정책을 트럼프가 지시했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부터 가장 많이 SNS의 자유를 만끽한 사람이다. 그는 가짜뉴스를 대량으로 유포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고 반대자들 비방에 이용했고 지지자들 선동에 활용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는 모두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면서 선거 기간 내내 SNS의 자유를 제한 없이 활용했다. 자신은 후보와 대통령 시절 SNS를 통해 온갖 허위정보를 퍼뜨렸음에도, 타인의 비판적 표현에 대해서는 제도적 억압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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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계정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는 그동안 SNS는 레거시 미디어에 비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신속하게 연대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진 대항 미디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레거시 미디어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생각과 주장을 쉽게 유통시켰다. 이런 일들이 보편화되면서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SNS 검열 정책은 대항미디어조차 무기력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해 주고 있다. 트럼프는 소통의 수단인 SNS가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권력이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독재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유학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은 일단 약자일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하고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기꺼이 표현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한다. 21세기도 4분의 1일 지난 시점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더 비극적인 것은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라는 명목하에 시작한 SNS 검열이 결코 일회성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검열과 탄압은 일단 애국의 명목으로 시작된다. 국민은 이 숭고한 이념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민주주의는 퇴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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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당국의 '외국학생 등록 차단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동안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경우 레거시 미디어나 SNS 모두 국가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에 쉽게 동의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는 레거시 미디어나 SNS 모두 통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왔다. 물론 트럼프가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SNS를 검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유학 오려는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 검열하겠다는 것이라서 이번 사태를 일반적 표현의 자유 억압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검열이라는 억압은 일단 시작하면 스스로 확장하는 속성이 있다. 미국 내 유학생들 SNS 검열로 이어질 수도 있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미국인들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국민과 권력 모두 기술의 활용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확장하려는 욕망이 있다. 국민은 기술의 발전이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권력 역시 기술의 도움으로 권력을 연장하거나 강화하려는 욕망이 있다. 둘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갈등적이다. 갈등은 타협을 통해서 조정되기도 하지만, 투쟁을 통해 정리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와 저항에 따라 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미국 정부가 시행하려는 SNS 검열 과정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비극은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느 공간에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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