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제대로 다시 읽기. 마커스 J. 보그 저자(글)
오래전 존 도미니크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를 흥미롭게 읽은 후 크로산의 저서 대부분을 다 읽었다. 그중에는 크로산과 이 책의 저자인 마커스 J. 보그가 공저한 책도 포함되었다. 당연히 다음 독서는 보그라 생각했다. 크로산 만큼 자극적이고 예리하고 통찰력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 기대는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크로산이 – 적어도 내가 읽은 현대 신학자 중에서는 – 원 탑이고 보그는 그의 온건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비유적 표현이다.
성서 제대로 다시 읽기, 류의 책들은 성서에 대해 폭넓고 깊은 지식이 없으면 감히 내놓기 힘든교양서다. 물론 성서 문자주의에 몰입되었거나 순복음 식 믿음에 경도된 목회자가 펴낸 무조건 믿어라 식의 책들을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이 책은 한 철학교수가 오랜 시간 철학 연구를 한 끝에 내놓은 서양철학사와 같다. 이만큼 공부하다 보니 이제 좀 알 것 같아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보그의 말이다.
이 책에서 내가 추구했던 핵심적인 목적 중 하나는 – 중략-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읽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7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스라엘의 창조 이야기가 완전히 진실이라는 내 생각을 덧붙이겠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은유적 또는 상징적인 이야기로서 진실이라는 말이다. 45
사실이 아닌 것도 이 외에도 무수히 많다.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현대 역사학은 정당한 이유로 모세 오경이 모세의 저작이라는 개념을 거부하였다. 134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는 성인 남성만 60만으로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의 인구보다 많다. 출애굽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마 몇천 명이었을 것이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완벽한 텍스트로 수용하는 순간, 성서가 말하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근본주의적 사고는 사실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운동으로서 그리스도교 근본주의는 19세기 후반을 그 근간으로 해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비롯되었다. 23
비교적 최근의 경향이라는 것이다.
근대에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사실성에 대한 근대의 집착 때문이라고 보그는 분석하고 있다.
이런 근대는 넘어설 필요가 있다. 보그가 탈근대를 언급한 이유다.
1. 탈근대성은 근대성 자체가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진 상대적인 역사적 구성이라는 인식으로 특징지어진다.
2. 탈근대성은 경험에의 의존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경험은 개인의 영적 체험 같은 것이다)
3. 탈근대성은 사실적 근본주의를 넘어, 이야기가 문자적으로나 사실적으로 ‘사실’이 아니더라도 ‘진실’일 수 있다는 인식으로의 움직임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보그가 탈근대까지 언급한 이유는 분명하다. 근본주의자들은 특정 시기의 부산물이고 이제 그 시기가 끝났으니,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자는 점잖은 제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보그는 말한다.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해 말해줬다. 43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간의 고백, 기도, 열망 그리고 좌절 뒤에 환희 등이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진행되고 극복됐는지에 대한 서사라는 것이다. 주연은 하나님 단독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두 톱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기록한 서사시다 보니 때로는 착오, 과장, 생략 등 여러 부족이 있지만, 적어도 그 당시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했던 마음만은 진심이라서 서사시의 이면을 잘 독해하면, 우리는 성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보그의 결론이다.
읽다 밑줄 친 문장 몇 개
욥의 하나님 체험은 그에게 고통의 문제에 대한 아무런 새로운 해답과 설명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체험을 통해 욥은 세상의 공평함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실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262
어떤 경지에 이르면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요한계시록은 수천 년 후의 사람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아니라 당시의 그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396
될 수 있다, 가 아니라 메시지다, 라고 해야 하지 않나. 한국의 사이비들은 이 요한계시록을 너무 악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재림을 기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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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옮긴이의 글
제1부 기초
1장 렌즈를 통해 읽기: 성서 제대로 다시 읽기
2장 렌즈를 통해 읽기: 성서와 하나님
3장 렌즈를 통해 읽기: 역사와 은유
제2부 히브리 성서
4장 창조 이야기 제대로 다시 읽기
5장 오경 제대로 다시 읽기
6장 예언서 제대로 다시 읽기
7장 이스라엘의 지혜서 제대로 다시 읽기
제3부 신약성서
8장 복음서 제대로 다시 읽기
9장 바울 제대로 다시 읽기
10장 오한계시록 제대로 다시 읽기
11장 나가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