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영국 가디언이 지난달 20일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이 출판 경험이 있는 소설가 258명과 편집자 및 에이전트를 포함한 업계 관계자 7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소설가의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이 결국 자신의 작품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 상당수는 이미 출판사가 AI 초안 작성을 요구하거나 AI로 만든 시놉시스를 접해본 경험을 언급했다. 응답자 일부는 창작 시스템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면서 직업적 불안과 예술적 위기의식을 동시에 드러냈다. 특히 장르문학 분야에선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말까지 나온다.
장르문학의 위기는 설문 조사 결과 중에서 주목받는 내용 중 하나다. 로맨스, 스릴러, 범죄 소설 작가들이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 장르들은 오랜 시간 일정한 서사 패턴에 기대어 확장돼 왔고, 바로 그 예측 가능성이 AI에게 가장 먼저 넘겨질 위험 요소가 되었다. 알고리즘은 수천만 단위의 구조를 빠르게 학습하고 변주하는 데 능숙하다. 반면 독자들은 이제 단순한 패턴과 반복된 전개에 점점 더 쉽게 피로해진다. 이 점에서 단순 구조를 기반으로 한 장르들은 더욱 가파른 변화를 요구받는 셈이다. 결국 전형성만으로는 독자를 설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AI 데이터 학습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연합뉴스]
기술이 예술을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세기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수많은 화가들은 묘사의 시대가 끝났다고 절망했다. 기계가 사람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포착하는 순간, 회화는 무력해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회화는 묘사 경쟁을 내려놓는 대신 형태, 색채, 감각, 심리의 깊이로 확장했다. 인상주의부터 추상표현주의까지, 현대 미술의 거대한 실험들은 오히려 사진기의 등장 덕에 가능했다. 예술은 대체되는 대신, 새로운 영역을 부여받았다. AI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금의 순간도 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기술이 가져오는 위기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표현의 기회가 있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해 기존 표현 방식을 무력화시킬 때, 예술의 본질을 묻는 질문이 다시 시작된다. 예술은 매개 수단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공명에서 출발하고 종료된다. 사람들은 기계가 재현한 감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체험과 감정이 언어를 통해 자기 안에서 울리는 순간을 경험하고자 한다. 인간의 상처, 모순, 집착, 희망, 구원 같은 정서는 단순한 구조적 패턴이 아니라 존재적 진동에서 생성된다. 예술적 감동은 결국 창작자가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과, 이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독자의 정서적 지평이 만날 때 발생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도시거리예술 중심의 아트페어인 '어반브레이크 2023'을 찾은 관람객이 인공지능(AI)이 만든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의 영향력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쇠퇴해 왔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 시장에서 대중 소설이 인기 상품으로 소비되기 시작된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호황을 누렸던 소설 출판 시장은 정체되거나 축소되었다. 독자층 역시 축소되고 있다. 신규 진입하는 소비자는 보기 힘들고, 예전 독서 경험이 있던 일부 세대만 남아 있다. 종이책을 읽는 행위는 점점 특정 취향의 소수 행위로 축소되고 있으며, 특히 장편소설이 대중적 경험의 중심에 있던 시대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전자책 역시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AI 등장과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진행된 구조적 변화다.
소설이 힘을 잃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감각 경험이 텍스트 중심에서 영상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유통되는 동영상 플랫폼, 스트리밍 드라마, 짧은 영상 콘텐츠는 이제 문화적 우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서사를 읽는 시간보다 보는 시간이 훨씬 더 풍부하고 쉽게 확보된다. 이러한 흐름은 일시적 취향 변화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필연적 구조 변화다. 영상 매체는 몰입성과 접근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는다. 따라서 소설이 대중적 중심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되돌릴 수 없는 큰 흐름이며, 이는 AI가 아니라 시대가 만든, 회복 불가능한 변화다.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에서 열린 '2025 연세노벨위크' 기념한강 작가 문학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들 둘러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러나 예술로서의 소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 이유는 더 분명해지고 있다. 반복 가능한 패턴 서사는 AI에 넘기면 된다. 인간 작가가 붙잡아야 할 것은 기계가 다루기 어려운 세계다. 이는 깊은 정서, 모순된 감정, 설명되지 않는 감각, 특정 창작자만이 체화할 수 있는 생의 밀도 같은 것이다. 앞으로 남는 소설은 더 뛰어난 소설, 더 고유한 소설, 더 인간적인 소설일 것이다. 사진기 이후 회화가 그랬듯, 기술이 가져온 충격은 예술을 가장 예술의 본질에 맞도록 강한 압박을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소설을 경험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