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플랫폼으로: 워너브러더스가 넷플릭스로 간 의미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를 전격 인수하기로 한 소식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구조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수액은 827억 달러, 한화 약 106조 원 규모로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거래에서 인수액만큼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 문화산업의 권력 배치와 관련된 것이다. 극장 개봉과 케이블 방송 중심의 전통적 유통 구조를 상징해 온 워너브러더스가 스트리밍 기반 기업에 편입된다는 사실 자체가 시대 변화를 단번에 드러낸다. 영화의 생산 방식은 유지되지만, 유통 방식의 대전환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영화사 100년의 질서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적 명분을 들어 이 거래를 막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인수가 최종 성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워너브러더스는 지난 수년간 실적 악화와 조직 재편을 반복해 왔지만, 케이블TV 수익 모델의 붕괴를 막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콘텐츠 제작비는 급격히 증가한 반면, 기존 유통 채널에서는 이를 회수할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다양한 IP를 활용해 극장과 케이블, 자사 플랫폼을 동시에 운영하는 전략도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경영진이 추진한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 역시 일시적 처방에 머물렀고, 결국 대규모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연계만이 생존의 돌파구라는 판단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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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워너브러더스도 한때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도했다.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 맥스를 통해 돌파를 시도했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초기에는 ‘프리미엄 콘텐츠’ 전략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았으나, 폐쇄적 플랫폼 구조가 시장 확대를 가로막았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급증한 상황에서 단일 플랫폼에 콘텐츠를 독점 배치하는 방식은 지속적인 구독 유지에 불리했다. 게다가 플랫폼 운영 비용은 빠르게 증가했고, 콘텐츠 투자비는 회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HBO 맥스는 상대적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중간 규모 스트리밍 플랫폼의 딜레마’에 빠졌다. 자체 플랫폼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인수는 단순한 기업 합병이 아니라 콘텐츠 유통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워너의 콘텐츠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통합된다는 것은 기존 영화 산업의 시간·공간 질서가 해체되는 신호다. 극장 개봉이나 케이블 편성 중심의 시대에는 콘텐츠가 시간표에 따라 소비자에게 전달되었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과 환경에서 소비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상영 시간, 상영관 수, 편성 순서 같은 전통적 개념을 대체하고 있다. 이는 영화의 가치가 ‘어디서 어떻게 틀어지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발견하는가’로 바뀐다는 의미로, 영화 탄생 이후 가장 큰 지각변동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역시 흐름은 다르지 않다. 1990년대 단관극장에서 2000년대 멀티플렉스로 확대되며 일시적 르네상스를 맞았지만, 극장 산업은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거대 스크린과 압도적인 사운드라는 극장 본연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OTT 플랫폼 확장으로 영화 산업의 기반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내 멀티플렉스 3사 중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합병을 추진하는 등, 위기 돌파를 위한 업계의 자구책이 진행 중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관객은 개봉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보다는 플랫폼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바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이는 한국 영화 산업도 유통 중심이 극장에서 플랫폼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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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시장 (CG) [연합뉴스TV 제공. 자료사진]


흥미로운 점은 극장이 쇠퇴해도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는 더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제 극장의 상영 규격이 아니라 자신의 화면 크기에 맞춰 영화를 소비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초대형 TV 등 감상 환경은 다양해졌고, 화면 사이즈는 더 이상 영화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아니다. 오히려 개인화된 공간에서의 몰입도가 더 높은 경우도 많다. 상영관 중심의 표준화된 경험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최적화된 방식으로 영화 감상이 재구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영화가 플랫폼 생태계에서 더욱 풍부하게 소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콘텐츠 시장의 총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영화가 탄생한 1895년 이후, 관객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으로 이동해야 영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세기 내내 이어져온 이 아날로그적 감상 방식은 기술적·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본질적 조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대는 이 전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플랫폼은 영화 감상의 시간과 장소를 완전히 개인의 손으로 돌려주었고, 이는 영화사 130년을 통틀어 가장 근본적 변환점으로 평가된다. 워너브러더스의 넷플릭스 편입은 그 거대한 흐름의 상징적 순간이다. 전통적 영화 산업의 규칙이 사라지고, 새로운 규칙이 태어나는 시점—바로 그 경계에 우리가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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