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2026년은 지방선거가 예정된 중요한 해이다. 지방선거는 중앙정치보다 시민의 일상과 밀착된 영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절대 가볍지 않다. 교육, 교통, 복지, 개발 정책 등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들의 상당 부분이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방정부가 어떤 철학과 우선순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제도 아래서도 체감되는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방정부의 역량과 성과에 따라 주민들의 일상은 개선될 수도 있고 정체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지방선거는 단순히 소선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생활 기반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선거가 축제라기보다 불안과 갈등이 농축된 사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먼저 떠오르는 이벤트가 되어가고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가짜뉴스와 부정선거론이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들어와 이 두 현상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해프닝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되었다. 과거에는 주변부 담론에 머물렀던 의혹들이 플랫폼 알고리즘과 결합하며 고정 지지자들의 폐쇄적 공간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가짜뉴스 (CG) [연합뉴스TV 제공]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도 반복 노출될수록 사실처럼 인식되는 진실의 환상이 만들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전문가의 권위와 공적 기관의 신뢰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소비하는 선택적 노출이 강화되면서, 상호 검증과 토론의 공간은 줄어들고 확신만이 커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AI시대에 들어와 이런 심리적 확증편향은 지지자들을 더 강력한 이념적 확신범으로 만들어 음모론 전투에 참여하게 만든다. 자신의 진영이 이기지 못하는 선거는 부정한다. 이제 선거는 더 이상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가짜뉴스와 부정선거론은 단순한 잘못된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이성에 기반한 신뢰 체계의 붕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우선 가짜뉴스는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유권자의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특정 후보나 집단에 대한 허위 정보는 이미지와 감정을 통해 강력하게 각인되며, 선거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더 빨리 퍼지고 더 오래 기억된다는 점도 문제를 심화시킨다. 부정선거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거 결과 자체를 인정하지 않게 만든다. 패배는 곧 조작의 결과가 되고, 승자는 부정의 산물로 규정된다. 선관위의 합리적 설명이나 언론의 다층적 팩트체크, 지상파 방송의 탐사보도가 이어지더라도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3차 변론이 열린 지난해 1월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짜뉴스와 부정선거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강화하며 부정적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가짜뉴스는 부정선거론을 위한 정황과 서사를 제공하고, 부정선거론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동력이 된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정치적 피로감과 냉소주의는 더욱 깊어진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문화가 굳어질 경우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근본에서부터 흔들린다. 선거는 이미 조작돼 있다는 인식은 정치 참여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거나 극단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선거를 통해 갈등을 정리하기보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가 형성된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자기부정의 길로 접어드는 셈이다.
최근 주요 선거에서 이런 위험성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의해 제기된 부정선거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계속 증폭시키고 있다. 다큐멘터리 ‘더 플랜’에서 18대 대선 투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이 등장한 이후 부정선거 담론은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의 주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음모론이 단순한 인터넷 말싸움 수준을 넘어서 국가의 통치 담론과 만나기 시작할 때,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음모론적 서사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실제 정치행위와 권력작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갖게 된다. 의심이 하나의 정치자원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한 기울기를 향해 움직인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해 6월 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도서관에 마련된 청파동 제1투표소에서 관계자가 기표 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는 멈출 수 없다. 민주주의란 갈등과 혼란이 전혀 없는 체제가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극복해 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난무하는 시대일수록 시민의 성숙한 판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시민의 중요한 시민적 역량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행착오 역시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사실을 고르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의심의 시대를 넘어설 힘을 갖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