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공개가 의미하는 것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통일부가 북한의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재분류했다. 이제 연구자나 일부 전문가가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합법적으로 노동신문을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해 온 오랜 관행이 하나 해제된 것이다. 국가안보와 직결된다고 여겨졌던 정보가 공개 대상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이제 노동신문 기사는 금지된 정보에서 판단의 대상으로 이동했다. 정보는 더 이상 숨겨야 할 물건이 아니라, 공개된 텍스트로 취급되기 시작했고, 국가는 더 이상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민의 해석 능력을 믿고 도와주는 안내자가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신문은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노동신문을 열람하거나 소지, 유통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학술 연구 목적임을 소명하지 못하면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 이전 시대에는 밀반입된 신문 한 장이 수사 대상이 되었고, 디지털 시대에는 파일 하나하나가 이적 표현물로 분류되었다. 정보의 내용이 아니라 출처와 성격이 죄의 기준이 되었다. 이는 정보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생산했느냐가 더 중요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노동신문은 텍스트라기보다 금기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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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전환된 북한 노동신문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비치돼있다. (서울=연합뉴스)


노동신문이 오랫동안 개방되지 못했던 이유는 정치적 맥락과 깊이 연결돼 있다. 권위주의 국가 시절, 북한 관련 정보는 곧 체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적의 선전물은 시민의 사상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전제가 작동했다. 냉전과 분단이라는 조건 속에서 국가는 정보의 차단을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정보는 위험한 것이었고, 시민은 그 위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시각은 민주화 이후에도 상당 부분 유지되었다. 체제 경쟁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동신문은 ‘읽으면 안 되는 텍스트’로 오랫동안 봉인되었다. 이는 정보 통제가 민주주의의 예외로 인정되던 관행을 보여준다.


더 주목할 점은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이러한 차단 논리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정보는 국경을 넘어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환경이 되었지만, 제도적 사고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노동신문은 해외 서버와 다양한 경로로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국내에서는 금지된 정보로 남아 있었다. 이는 실질적 위험보다는 상징적 두려움에 가까웠다. ‘열어주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가정이 정책을 지배했다. 이는 통제의 관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기술은 변했지만, 국가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정보 차단은 더 이상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었음에도 유지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날 플랫폼과 디지털 검열의 문제로 이어진다. 국가와 플랫폼은 유해 정보, 허위 정보,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접근 차단과 노출 제한을 일상화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무엇을 보게 할지, 무엇을 보지 못하게 할지를 조용히 결정한다. 표면적으로는 시민을 보호하려는 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의 기회를 선별하는 권력이 작동한다. 노동신문을 차단하던 과거와, 콘텐츠를 제한하는 현재는 서로 다른 시대의 장면이지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여전히 시민을 신뢰하지 않는가. 시민은 여전히 정보 앞에서 보호 대상에 머무는가. 시민은 여전히 판단하기에는 불안한 존재로 전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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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회도서관에 비치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시민이 촬영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관계자는 지난 5일 오후부터 노동신문을 비치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사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알고 있듯이, 노동신문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읽을 만한 콘텐츠가 거의 없다. 반복적인 선전, 지도자 찬양, 경직된 문체는 금세 피로감을 준다. 자극적이거나 설득력 있는 내용도 드물다. 따라서 실제로 노동신문을 접한 시민들은 빠르게 관심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번 이탈한 관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보는 소비되지 않으면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판단할 가치가 없는 정보는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것이 바로 개방이 통제보다 강력한 이유다. 차단은 신비화를 낳지만, 공개는 무력화를 낳는다. 정보의 힘은 숨길 때가 아니라 드러낼 때 약해진다.


이번 노동신문 공개가 던지는 의미는 분명하다. 국가가 정보를 두려워할수록 통제는 강화되지만, 그 통제는 시민의 성숙을 따라가지 못한다. 반대로 정보에 익숙한 시민은 차단보다 개방에 더 안정적으로 반응한다. 민주주의의 기준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막느냐가 아니라, 시민의 판단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있다. 읽을 자유는 판단할 자유의 전제이며, 그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결국 시민을 미성숙한 존재로 고정시킨다. 노동신문 공개는 국가의 용기가 아니라, 시민의 판단 능력을 뒤늦게 인정한 결과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온오프라인 모든 플랫폼에서 공개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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