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최근 현대자동차는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실제 생산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시연 단계에 머물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드디어 제조 공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틀라스의 가격은 대당 약 13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금액은 자동차 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인건비 기준으로 대략 2년 치에 해당한다. 로봇이 매일 16시간씩 2명 몫의 일을 한다면, 사실상 1년 만에 투자비 회수가 가능하다. 이는 제조 현장에서 ‘사람을 대체해도 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보다 ‘대체하는 것이 더 이익인가’라는 경영적 판단이 이미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노조는 즉각적이고 강한 반발을 보였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노조 소식지를 통해 “노사 합의 없는 일방통행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AI 로봇 도입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노조는 아틀라스 도입이 고용 불안과 대량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전 협의 없는 기술 도입을 문제 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신기술 거부가 아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기존 자동화 설비와 달리 인간 노동을 직접적으로 모방하고 대체한다는 점에서 위협의 성격이 다르다. 노조의 저항은 로봇 그 자체보다, 로봇이 불러올 노동 질서의 재편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1월 23일 JTBC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사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려와 호기심 속에 조금씩 우리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식당과 카페에서는 이미 서빙로봇이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물류창고에서는 자동 분류 로봇과 무인 운반차가 사람을 대신해 움직인다. 도로 위에서는 자율주행 택시가 인간 운전자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공항, 병원, 호텔에서도 안내·청소·배송 로봇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들 기술은 모두 인간 노동을 줄이거나 대체해 왔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사회적 저항의 크기가 항상 같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동일하게 노동의 대체를 수행했지만,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서빙로봇은 비교적 쉽게 사회에 받아들여졌다. 인간 노동을 완전히 밀어내기보다는 보조하는 역할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그릇을 나르고 단순 반복 업무를 맡는 정도라면, 노동의 존엄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우한의 자율주행 택시의 경우 일부 기사들의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편의성과 효율성이라는 사회적 명분 속에서 논의는 점차 제도권으로 흡수되었다. 일정한 규제와 보상, 전환 논의가 뒤따르며 사회적 합의가 형성됐다. 즉, 기술 도입의 갈등은 부분적 대체와 점진적 전환이라는 완충 장치를 통해 관리될 수 있었다. 사회는 그렇게 기술을 수용해 왔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다르다. 아틀라스는 노동의 일부를 보완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노동 자체를 전면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존재다. 팔과 다리를 가진 휴머노이드는 특정 공정이 아니라 사람이 하던 일 전반을 목표로 한다. 이는 자동화의 질적 전환을 의미한다. 더 이상 숙련과 경험, 체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봇은 24시간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로봇은 노조에 가입하지도 않으며, 따라서 임금 인상과 근로 환경 개선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 앞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과도한 것이 아니다. 현대차 노조의 반발은 기술 혐오가 아니라, 노동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공포에 가깝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잭 잭코우스키 보스턴다이나믹스 아틀라스 개발 총괄과 아야 더빈 보스턴다이나믹스 휴머노이드 응용전략 담당이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해 왔다. 산업혁명 시기의 방적기,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컨베이어벨트, 단순 사무직을 대체한 컴퓨터,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인터넷 모두 처음에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기술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기술은 결국 사회의 일부가 되었고,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어 냈으며 사회적 부를 증대시켰다. 특정 계급, 계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은 사회적 조정과 합의를 거쳐 사회의 필수 구성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출현을 목도하게 된다.
아틀라스의 도입과 현대차 노조의 반발은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다. 그러나 이 갈등은 길게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는 피지컬 AI 시대의 문턱을 넘어섰다. 인간의 육체노동을 전제로 한 산업 구조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맞고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로봇을 막을 수 있는가’가 아니다. ‘피지컬 노동이 사라진 사회에서 노동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동의 의미, 분배의 방식, 존엄의 기준을 다시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답이 나와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피지컬 AI 시대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