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가미타니 타이치로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좋은 책이라서 해서 사서 읽었다. 마음에 드는 주제였다. 사회학도의 가장 큰 관심은 당연히 근대화다. 생각해 보니 일본 근대화에 관한 책을 별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첫 몇 장을 읽다 보니 아차 싶었다. 기대와 많이 달랐다. 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래도 꾸역꾸역 다 읽었다. 그 페친에게는 좋은 책이었는지 몰라도 내게는 그저 그런 평범한 책이었다. 마치 우등생이 제출한 모범 리포트같았다. 저자는 근대화 과정이라는 역사에서 단 한 번밖에 존재하지 않은 복합적 상황의 결과물을 아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난 다 알고 있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면 모든 것이 이해될 거야.”
저자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영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바지호트가 영국 근대화 과정을 서술한 책에서 활용한 분석틀을 이용해 일본 근대화 과정을 설명한다. 바지호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근대는 전근대화와 달리 토의에 의한 통치의 확립이 가능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무역과 식민지화는 전근대를 변혁시켰고, 토의에 의한 통치는 근대화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개념을 그대로 일본 근대화 과정에 적용한다.
관습의 지배에 인류의 자유가 구속되어, 독창성은 정체됩니다. 그러한 세계를 종결시켜 인류를 관습의 지배에서 해방시킨 것이 근대의 역사적 의미였습니다. 바지호트는 그것을 토의에 의한 통치의 확립이란 명제로 집약합니다. 29
이렇게 바지호트는 오로지 무역과 식민지화를 관습의 지배의 변혁요인으로, 토의에 의한 통치, 즉 근대화의 촉진요인으로 주목했습니다. 39
토의에 의한 정치는 막번체제 이후 일본의 정당정치 형성사로 연결된다. 무역 문제, 넓게 말해서 자본주의는 국가 주도적 ‘식산흥업’ 정책에서 출발한다. 식민지화는 “일본의 경우 내셔널리즘의 발단이 제국주의와 결합했고 그것이 구미 제국과는 다른 일본의 식민지제국이란 특성을” 만들었다. 어쨌든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역할을 일본에서는 천황제가 수행한다. 이제 모든 것이 짝이 맞았다. 하나씩 대응해서 일본의 근대화 서사를 완성하면 된다. 저자는 이 공식에 따라 하나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영국 사례 분석으로 일본 근대화를 서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저자는 강하게 믿고 있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의 역사 인식이 너무 단순해 보여 읽는 내내 뭔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더 이상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마지막 챕터를 읽고 나니, 동경대 법학부 모범생의 답안지를 읽은 느낌이 들었다.
메이지 국가 입장에서 보면 앙시앵 레짐이었던 막번체제 속에 그 나름대로 메이지 국가체제의 틀인 입헌주의를 받아들일 만한 조건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49
번벌이 담당했던 체제 통합 역할은 점차 정당으로 이행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은 번벌이 되었고, 또한 번벌은 정당이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정당이 막부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85
일본이 토의에 의한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근대화 이전에 이미 맹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의 못 할 것은 없지만, 너무 단순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 안 되는 문장도 있다.
원전사고(2011년 동일본 대지진)는 일본 근대의 최대 성과였던 일본 자본주의의 기반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즉 일본 근대 자체에 대한 근원적 비판을 야기했습니다. 285
원전 사고가 어떻게 일본 근대 자체에 대한 근원적 비판으로 연결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끝으로, 번역이 너무 너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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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장 일본의 모델, 유럽 근대는 무엇인가?
제1장 왜 정당정치가 성립했는가?
1. 정당정치 성립을 둘러싼 문제
2. 막번체제의 권력 억제 균형 메커니즘
3. ‘문예적 공공성’의 성립: 모리 오가이의 ‘사전’이 갖는 의미
4. 막말 위기 하 권력 분립론과 의회제론
5. 메이지 헌법 하 권력 분립제와 의회제의 정치적 귀결
6. 체제통합 주체로서 번벌과 정당
7. 미국과 비교해 본 일본의 정당정치
8. 정당정치의 붕괴와 ‘입헌적 독재’
제2장 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을까?
1. 자립적 자본주의로 가는 길
2. 자립적 자본주의의 네 가지 조건
(1) 정부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실험
(2) 국가자본의 원천인 조세제도의 확립
(3) 자본주의를 담당할 노동력 육성
(4) 대외평화의 확보
3. 자립적 자본주의의 재정 노선
4. 청일전쟁과 자립적 자본주의로부터 전환
5. 러일전쟁과 국제적 자본주의로 가는 결정적 변화
6. 국제적 자본주의 지도자의 등장
7. 국제적 자본주의의 몰락
제3장 왜, 어떻게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1. 식민지제국으로 발을 내딛은 일본
2. 일본은 왜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3. 일본은 어떻게 식민지제국을 형성했는가?
(1) 러일전쟁 후: 조선과 관동주조차지 통치체제의 형성
(2) 타이쇼 전반기: 주도권 확립을 노리는 육군
(3) 타이쇼 후반기: 조선의 3ㆍ1독립운동과 그 대응
4. 새로운 국제질서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지역주의’
(1) 1930년대: ‘제국주의’를 대신할 ‘지역주의’의 대두
(2) 태평양전쟁 이후: 미국의 ‘지역주의’ 구상과 그 후
제4장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인가?
1. 일본 근대를 관통하는 기능주의적 사고양식
2. 기독교의 기능적 등가물로서 천황제
3. 독일 황제와 대일본제국 천황
4. 「교육칙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5. 다수자 논리와 소수자 논리
종장 근대의 경과로부터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다
1. 일본 근대의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인가?
2. 일본 근대가 도달한 곳은 어디인가?
3. 다국 간 질서의 유산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저자 후기/ 역자 해제/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