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개통을 위해 신체를 헌납하는 시대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보이스피싱에 악용되는 대포폰을 근절하기 위해 도입한 안면인증 절차가, 삼 개월의 시범 적용을 거쳐 다음 달 23일 정식 도입된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사회적 합의나 충분한 공론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정책이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되고 헌법이 보장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위)에 공식 진정을 제기했다. 얼굴 정보와 같은 생체정보는 원칙적으로 수집과 처리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음에도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제 수집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공식 진정의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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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은 비교적 단순하다. 안면인증은 대포폰 개통을 구조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서 도입이 필요하며, 인증 과정에서 획득한 생체 정보는 별도 저장하지 않고 본인 확인 후 즉시 삭제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우선 동의 여부다.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는 본인의 자발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휴대폰 개통 시 안면인증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일 수밖에 없다. 휴대폰 외에 대체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안면인증 동의 요구는 강요된 동의라는 것이다.


이 정책은 보이스피싱이라는 복합적 사회 범죄를 하나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행정 편의주의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안면인증이라는 ‘기술적 해결책’을 거의 유일한 정답처럼 제시하지만, 이는 기술이 사회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술 결정주의적 사고를 반영한다. 보이스피싱은 금융 시스템의 허점, 조직화된 범죄 구조, 정보 취약계층의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가 얽혀 있는 문제다. 그러나 정책은 이런 구조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은 채, 시민 개개인의 신체 정보를 통제하려고 한다. 결국 범죄를 막기 위한 비용과 불편은 가해자가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고르게 전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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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PG) (연합뉴스)


정부의 이런 정책은 일견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인력과 예산을 줄이고, 감시를 자동화하며 사후 수사를 사전 차단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율성을 얻는 대신 중요한 것을 잃는다. 안면인증은 무언의 규율을 만든다. 어디서든 얼굴이 인식될 수 있다는 전제는 행동을 바꾼다. 집회 참여, 특정 장소 방문, 익명적 발언은 점점 부담스러운 선택이 된다. 이는 법으로 금지되지 않았음에도 기술이 사실상의 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사례다. 효율성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자유는 말없이 수축한다. 중국의 사례처럼 과도한 사회 통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상실되면 민주주의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보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어디로 흘러가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를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특히 생체 정보는 일반 개인정보가 아니라 신체 그 자체와 결합된 수정 불가능한 정보다. 정부는 별도로 저장하지 않는다는 기술적 설명으로 문제를 축소하지만, 수집과 대조 과정 자체에서의 해킹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 번 유출되면 아이디 패스워드와 달리 변경이 불가능하며 유출된 생체정보의 소유권은 더 이상 원소유자에게 있지 않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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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보안사고 (PG) (연합뉴스)


정부의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은 안면인증 절차를 휴대폰 개통할 때 적용한 것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용자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동의는 정보 주체와 수집 주체 사이의 극심한 권력 불균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도를 설계하는 정부와 이를 집행하는 통신사는 적극적으로 추진할 명분과 이해관계가 있지만, 실제 사용자인 시민의 입장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의 동의는 자발적 의사 표시가 아니라 통과의례에 가깝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전제로 삼는 ‘자유로운 동의’ 원칙을 근본부터 흔든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특정 정부 부서의 정책에 의해 훼손될 상황에 처해있다.


이제 판단의 무게는 다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향하고 있다. 범죄 예방이라는 공익적 효율성과, 신체 정보의 신성함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민주적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위원회의 결정은 단순한 행정 판단을 넘어선다. 위원회의 결정은 향후 국가가 효율적 행정을 위해서 어디까지 개인의 신체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기준의 근거가 행정의 편의성이 되어선 안 된다. 생체 정보가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사회, 혹은 언제든 유통될 수 있다고 전제된 사회는 결코 더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불신과 통제가 일상화된, 더 취약한 사회일 가능성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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