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 앞에서 멈춘 AI 출판물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by 김홍열

최근 국립중앙도서관이 1년에 약 9000종의 책을 쏟아내는 특정 AI 출판사의 출판물을 더 이상 납본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밝힌 표면적 이유는 해당 출판물들이 공개 자료 편집물이거나 내용 반복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기존의 인간 저자 출판물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판단이다. 실제로 유사한 성격의 인간 저작물은 지금까지 문제없이 납본되어 왔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납본 도서에 대해 도서관이 지급해야 하는 보상 비용이 AI 출판물의 대량 생산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AI 출판사에 지급하는 보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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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SNS 갈무리


그러나 현행 도서관법 제21조는 이러한 선택을 쉽게 정당화하지 않는다. 법은 “누구든지 도서관자료를 발행 또는 제작한 경우, 그 발행일 또는 제작일부터 30일 이내에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온라인 자료는 원칙적으로 제외되지만, 국제표준자료번호를 부여받은 경우에는 예외 없이 포함된다. 수정증보판 역시 동일하게 납본 대상이다. 이 조항 어디에도 저자의 정체가 인간인지, 알고리즘인지에 대한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률은 저작의 주체보다 발행이라는 행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법의 문언만 놓고 보면 AI 출판물 역시 명백한 납본 대상이다.


물론 국립중앙도서관의 현실적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납본 거부라는 최근 결정 이전까지 AI 출판물 규모는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특성상 그 숫자는 언제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출판 비용과 시간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진 환경에서, 출판물의 희소성이라는 이전의 전제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지금의 납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산과 인력, 물리적 보존 공간은 빠르게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국가 기록 보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문제로 이어진다. 이번 결정은 그 긴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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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개관 80주년 특별전 '나의 꿈, 우리의 기록, 한국인의 책장' 언론공개회에서 관람객들이 '디자이너의 책장'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도서관법에서 출판물 납본을 의무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도서관 지식정보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다. 공공도서관은 오랫동안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출판물을 구매하고 보존함으로써 출판사와 저자를 지원했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지식 생산으로 이어졌다. 국가, 출판시장, 시민이 상호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공공도서관은 지식 유통의 핵심 인프라였다. 도서관의 장서는 단순한 책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지식으로 인정하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선택의 결과였다. 납본 제도는 이 선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였다. 그래서 납본은 행정 절차가 아니라 공공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구조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지식정보의 생산과 유통에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출판물은 더 이상 인간의 지적 노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성형 AI 알고리즘은 이미 대량의 텍스트를 생산하고, 그 일부는 일정한 품질 기준을 충족하며 시장에서 소비된다.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출간된 AI 출판물의 경우 이미 양질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출판물들은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산·복제·확산된다. 도서관은 더 이상 지식의 관문이 아니라 수많은 유통 경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출판물을 물리적으로 수집·보존한다는 것은 현실과 어긋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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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일러스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동안 중앙도서관에서 도서관자료를 납본받은 이유 중 하나는 ‘도서관자료’라는 개념 안에 암묵적이지만, 누구나 동의하는 당연한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료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전제다. 이 전제는 오랫동안 문제 되지 않았다. 인간 저자 중심의 출판 환경에서는 ‘사람 저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도서관은 출판물을 구매해야 할 명분은 있었지만, 특정 출판물을 배제해야 할 명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AI 출판물은 이 당연한 전제를 정면으로 흔들고 있다. 인간 저자라는 기준이 사라질 때, 제도는 무엇을 근거로 선택과 배제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AI가 만든 출판물이 인간 지능에 의해 작성된 출판물보다 본질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의 이번 결정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는 단지 AI 출판물의 문제라기보다, 국가가 어떤 지식을 보존하고 어떤 지식을 흘려보낼 것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의 문제다. 국가가 모든 출판물을 의무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한가. 지식의 공공성은 ‘모두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재정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장서의 양이 곧 공공성의 지표였던 시대는 분명 저물고 있다. 도서관은 이제 수집의 기관이 아니라, 선택·연결·해석의 기관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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