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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Feb 20. 2016

소프트웨어 의무 교육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

표현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작년 9월 2일 자 한겨레 신문 일면 하단에 논쟁적인 기사가 하나 실렸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전문가의 발언이라고 큰따옴표로 처리했지만 내용을 읽어 보면 전체적으로 한겨레의 시각이 보인다. 제목은 이렇다.  [초등생에 소프트웨어 · 한자병기 ·  안전 교과 공부까지," 2015 교육과정은 온갖 이익집단의 잔칫상" ]이 중 소프트웨어 교육에 관한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정안을 보면, 초등 5~6학년이 초등 실과에서 연 17시간씩 모두 34시간에 걸쳐 소프트웨어를 배우게 된다. 실과 시간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목공·바느질·요리·성교육·생활관리 등 실생활 과목이 축소되고 컴퓨터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어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알고리즘·프로그래밍 같은 어려운 내용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칠 이유가 없고, 가르쳐봐야 효과가 없다는 게 교사들의 중론이다. (출처 : 인터넷 한겨레)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이 도입되면 결국 사교육 시장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초등교육과정 연구모임’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교육부가 2015년 개정 교육과정 발표 후 중도 · 진보 성향의 15개 교육 시민단체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학생들을 위한 교과가 아니라 주요 이해 당사자인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교사들도 준비가 안되었으면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분리하여  생각해 보자. 우선 교사들이 준비가 안되었다면 시간을 갖고 준비하면 된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교육이 학생들을 위한 것인가 또는 이익집단을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사회적, 철학적 대답이 논쟁의 본질이다.


좀 더 요약적으로 말하자면, 소프트웨어 교육이란 무엇인가 또는 소프트웨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다. 답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언어인가 또는 기술인가.  소프트웨어 교육이 위에 언급된 목공·바느질·요리와 같은 기술이라면 굳이 정식 과목으로 채택할 필요가 없다.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방과 후에 가르쳐 주면 된다. 소프트웨어 의무 교육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논리가 여기서 시작된다. 특정 기술 즉, 코딩, 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은 특별한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모든 학생들이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 대학교나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서 배워도 된다.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은 전인격 형성에 필요한 기초 교양과 사회성 형성에 필요한 필수 과목 위주로 구성돼야 한다. 가뜩이나 서울대 위주의 입시교육이 판을 치고 있는 천박한 풍토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추가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 이런 주장이 이해된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기술 교육의 하나라면.


이제 다른 주장을 들어보자. 알고 배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인간은 언어와 문자를 통해 역사 시대를 만들어 왔다. 역사 시대 이전에는 음성, 몸짓, 그림 등으로 상호 소통했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이전의  의사소통 수단과 더불어 더 많은 표현 수단이 생겼지만 주된 표현 수단은 문자로 정리되어 왔다. 문자는 곧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항상 문자가 있었다. 문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은 가상의 세계일 뿐이다. 책과 종이는 문자를 유지시켜 주는 하드웨어다. 책과 종이를 통해 문자는 교육이 되고 법이 되고 철학이 되어 왔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사상 체계나 교육 시스템은 이 프레임 안에서 구축, 운영되어 왔다. 이제 그 프레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자를 통한  자기표현의 시대에서 문자 외에 솔류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표현이지 문자가 아니다. 종이 책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 중요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한동안은 전자책의 비중이 늘어나겠지만 이 역시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전자책 역시 문자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점차 문자 외에 이미지나 사진, 동영상,  음악, 이모티콘, 새로 만들어진 기호 등이 혼합되어 종이 책이 아닌 LCD Display 위에서 표현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게임도 계속 나오고 있다.


굳이 문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있다. 문자를 통한 사유체계보다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자만이 언어가 아니라 생각도 언어고 드러내는 과정도 언어다. 문자적 언어가 갖고 있는 한계가 우리 세계의 한계다. 이미 오래전부터 현실 문자는 제도화된 사회 시스템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문자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이미 구축된 사회로  내재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 세대를 여기에 동참시킬 필요는 없다. 표준어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언어는 아니, 표현양식은 늘 변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표현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넓고 표현할 방법은 많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정도만큼, 새로운 이모티콘을 네가 만들어  볼래,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표현의 우위는 없기 때문이다. 단어를 알고 문법을 알면 문장을 만들고 소설을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 언어를 알고 코딩을 알면 프로그래밍을 하게 되고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이모티콘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사유체계는 문자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이 항상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문자에 중독된  기성세대의 관점을 탈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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