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아, 이리와봐~~"
우리집 고양이 이름은 겨울이다. 난 집에 있을 때 겨울이를 습관적으로 찾고 부른다.
하지만 겨울이는 내가 아무리 불러도 자기가 원할 때만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봐..
그래도 난, 오늘도 여전히 겨울이를 부르고 있다.
겨울이를 키우기 전까지 과연 누가 알았을까. 내가 이렇게 고양이를 예뻐하고 좋아하게 될 줄.
딸바보가 아니라 냥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의 첫 일과가 있다. 겨울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러 다니기!
가끔은 거실에 누워있기도 하고, 종종 옷장에 숨어있기도 한다. 가끔은 서재방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엔 항상 흔적이 남는다. 고양이털의 흔적.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양이가 얼마나 완벽한 동물인지.
물론, 털이 무지하게 빠지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며칠만 청소를 안 하면 털뭉치가 바람에 날려 집안을 굴러다닌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게 아니라 고양이 털덩어리가 방 안을 배회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집 안에 털공장이 있는 것 같다;;
털은 옷을 입을 때도 힘들게 한다. 특히 검은 옷을 입는 날이면 많이, 아주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
가끔 생각없이 바닥에 놓여있던 검은 옷을 입고 나가면 난리가 난다. 여기저기 묻은 고양이털을 하루종일 털어내야 한다. 나도 털고, 옆사람도 털어주고, 가끔 멘탈도 털린다.
내가 옷을 입은 건지, 고양이 털을 입은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고양이는 말을 하지 못 한다. 물론 고양이가 말을 하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겨울이랑 언어적 의사소통은 못 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난 끊임없이 겨울이를 부르고 말을 건넨다.
"왜 계속 누워있어? 심심해? 놀아줄까?"
"너는 집에만 있으면 안 답답하니? 바깥 세상이 궁금하지도 않나보네"
"너는 무슨 낙으로 사니? 오늘은 술 한잔 하고 싶지 않아?"
가끔 겨울이가 누워있으면 그 옆에 눕는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맞춘다.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는다.
겨울이는 옆에 누운 나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본다.(물론 이 때 혼자만의 공간으로 도망가기도 한다.)
아이컨택을 하다가 살포시 내 품에 안아본다.
오늘은 도망가지 않고 내 품에 안긴 채로 나의 눈을 바라본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신호처럼.
그럼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는다. 몇초가 지나자 갸르릉 거린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겨울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얌전히 품에 안긴 겨울이를 내려다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 진다.
온 세상의 평화로움이 나에게 온 듯 하다. 평화로움 뒤엔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 때만큼은 헷갈리기도 한다. 내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지, 조그만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인지.
흔한 위로의 말로도, 독한 술로도 풀리지 않던 마음도 녹여내는 존재가 고양이가 아닐까.
단지 고양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지긋이 바라보고, 쓰다듬고, 품에 안았다. 그런데 위로를 받는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된다. 자연스럽게.
오랜 세월 전혀 모르고 살았던 사실이다. 단지 같이 있는 것만으로 마음을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존재가 고양이다. 고양이는 그런 존재다.
예전에 미술관에서 본 문구가 떠오른다.
"세상에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음악과 고양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