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1. 점, 선, 면
'점, 선, 면'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점, 선, 면'의 개념을 활용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아래의 작품을 봅시다. 너무나 유명한 이미지죠? 대한민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벽화 이미지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저는 이 이미지를 국사 책에서 처음 접했고,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고구려인의 기상이 느껴진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외웠죠. '이 그림이 나오면 고구려 시대, 유적은 무용총.......'
'고구려인의 기상'따위의 역사적 배경지식은 잊어버리고, 지금부터는 이 그림을 눈으로 감상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그림의 가운데에 그려진 곡선들을 봅시다. 구불구불한 선들이 있죠. 선들의 굵기가 다르네요. 어떤 선은 굵고, 어떤 선은 얇습니다. 그리고 굵은 선 하나를 자세히 보니, 선 하나 안에도 다양한 굵기가 있군요. 어떤 부분은 더 굵고, 어떤 부분은 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들이 모여서 덩어리를 이루고 있네요. 옅은 색의 큰 덩어리와 좀 더 짙은 색의 작은 덩어리가 보입니다. 이 '덩어리'가 '면'입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면이 마치 산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네요.
그림의 일부를 선과 면의 관점에서 감상해 봤습니다. 어렵지 않죠? 다양한 굵기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그 위를 껑충 뛰어다니는 사슴, 말과 다양한 굵기의 곡선이 어우러져 역동적인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만약 곡선이 아니라 직선이었다면, 굵기가 일정했다면 이만큼 역동성이 느껴질 수 있었을까요? 사슴과 말이 산등성이를 뛰어다니는 듯한 '역동성'에서 고구려인의 높은 기상을 느낄 수 있는 거죠.
이 그림에서 일단 눈에 잡히는 건 집과 나무죠. 집과 나무의 묘사에서 특이한 점을 찾으셨나요? 집은 아주 정갈한 직선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지붕과 창문, 마루, 기둥, 담까지 전부 직선으로 표현되었죠. 그런데 나무들의 묘사에서는 직선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곡선으로 나무 기둥을, 콕콕 찍은 듯한 점으로 잎을 표현했죠. 자연이 만든 것과 인간이 만든 것의 명확한 대비가 돋보입니다. 느껴지시나요?
이번에는 나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죠. 집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들은 색이 짙고, 잎이 무성한 느낌이 납니다. 붓에 먹을 충분히 묻혀서 툭툭 얹은 듯한 느낌이죠. 종이에 충분히 많은 먹이 스며들어 약간 번진듯한 느낌도 있네요. 멀리 있는, 원경의 나무들이라 그런지 앞에 위치한 나무들보다 촉촉하고 아련한 느낌이 나는군요. (이 부분은 명암, 색과 관련된 거라서 나중에 자세히 다룰 주제니까 참고만 해주세요.)
앞에 위치하고 있는 나무들은 어떤가요? 뒤의 나무들보다 나뭇가지가 훨씬 세밀하게 표현되었네요. 근경에 있으니, 좀 더 자세히 보였을 겁니다. 그리고 나뭇잎은 붓의 포인트를 세워서 콕콕 찍은 듯한 느낌이죠? 점들이 작고 세밀합니다. 먹색도 원경의 나무들과 다르게 옅게 보이네요.
인간과 자연의 대비, 원경과 근경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작품 설명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술관에 가서 이 작품을 감상한다면, 아마 작품 설명에 이 문장이 있을 겁니다. 그림을 충분히 감상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대비, 원경과 근경의 대비가 전혀 와 닿지 않겠죠. 작품을 그냥 한 번 보고 지나치면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이것저것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요.
이미지는 점, 선, 면으로 만들어집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이에요. 특히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추상화하는 경향이 있는 현대 미술에서는 정말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예요. 복잡한 사물이나 감정이 점 하나로 추상화되기도 하죠. '추상'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다루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