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생각하며
A에게 연락이 왔다. 혀가 꼬인 상태였다. 술 취해 하는 전화는 대개 먼저 끊곤 한다. 아무 의미가 없을뿐더러 서로 다른 말만 하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내가 아는 A는 절대 주사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거든. 취할 때 쯤 되면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이런다니.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됐다. 몇 번의 확인 후 겨우 그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가서 A를 봤다. 혼자 독한 술을 몇 잔 째 비우고 있더라. 바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술도 약한 양반이 무슨 바보 짓인가 싶어 다독였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형 원래 안 이러잖아. 말해 봐요.
그렇게 A의 전 여자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헤어진지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장례식장 앞을 미처 다리지 못한 양복을 입고 서성거린 그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녀는 야근 후 택시를 잡으려 도로를 횡단하다 신호를 위반한 차에 치어 즉사했다. 그래도 고통 없이 편히 가서 다행이야. 하며 A는 중얼거렸다. 그랬을까. 언젠가 교통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다. 오토바이 운전자였던 그는 달려오는 차에 치어 몇 미터를 날아갔다. 사고 당시 헬멧을 착용했고 간신히 목격자들이 바로 신고한 덕에 목숨은 건졌지만 다시는 걷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 오토바이 운전자를 생각했다. 피가 흥건한 아스팔트 도로에 쓰러져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만큼의 고통을 느꼈을까. 몇 초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엉겹의 시간들 같았을 거다. A의 여자친구는 어땠을까.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그 짧은 고통을 생각해 본다. 난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는.
A가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부모님께 A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짧은 시간 동안 헤어져 보니 소중함을 알겠다고 했다고 했다. 다시 돌아가야 할 운명이었고 그런 관계였다고. 곧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주말에 연락해 다시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사고가 난 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유난히 새벽 공기가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