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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Oct 14. 2016

은밀한 시간

나쁜짓을 하기 좋은 시간이지


"나쁜짓도 하던놈이 하지 나같은 놈은 갑자기 할래도 못하겠다"

갑작스런 부인의 출장으로 시한부 기러기 아빠가 된 선배가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10년만에 찾아온 싱글라이프를 방탕하게 즐기려했더니 주말마다 영어학원에 자전거타기로 시간을 보낸단다. 자유가 없을때는 갈망하던 일탈들이 막상 자유를 얻고보니 진정 원하는게 아님을 깨달았다나


은밀한 시간,

5년전 비행기 티켓을 쥔 나는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릴 생각에 한껏 흥분해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나를 구속하던 시선, 규율, 법치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인이 되리라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의 자유.


빨간 망사스타킹을 신고 한껏 천박하게 꾸민 채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술에 취해 길거리의 물건을 부수며 세상을 저주하는 나를 상상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내 삶은 상상만으로도 투명망토를 입을 것처럼 짜릿했다.


온갖 배덕한 일을 해야지. 음탕하게! 천박하게! 거칠게!



짜릿함은 그것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때까지만 유효했다. 

투명망토를 입기 전에 내가 하리라 다짐했던 것들은 막상 가능하게 되니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망사스타킹은 예쁘지 않고 알콜은 두통만 일으켰다. 망토입은 내가 했던 일탈이래봤자 금지된 약물을 한번 시도해 본 것 뿐이다. 그것조차 생각만큼 자극적이지 않아서 한번만에 그만 둬 버렸다.


이 글을 쓰면서 아무리 나의 일탈을 생각해도 그 이상의 나쁜짓을 한 기억이 없다.(이런 젠장)


은밀한 시간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을 온전히 나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을 나만의 기억과 행동이라는 점이 그것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 시간에 만나는 내 모습이 예상외로 도덕적이라도 너무 억울해 하지 말아야지. 앞으로 그 어느 상황이 와도 망사스타킹을 신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적어도 스타킹 값은 아끼지 않았나.


욕망은 그것을 혼자 상상할때가 가장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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