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해하는 남자
몇 년 전에 개봉한 나우 이즈 굿의 주인공 테사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어린 소녀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까. 테사는 당돌하게도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으며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테사의 아버지는 40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로, 이혼하고 딸을 혼자 부양한다. 조연답게 이렇다 할 대사 하나 없이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어린 딸이 버킷 리스트 - 마약을 하고 싶다는 둥 - 를 말할 때나 병원에 갈 때에 항상 그녀의 옆에 붙어 있는다. 별로 입체적이지 않던 남자가 딱 한번 그의 마음이 보여 준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이 흥미롭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여느 때처럼 죽기 전의 버킷 리스트를 내일의 메뉴처럼 읊는 태사 앞에서 아버지는 오열한다. '네가 떠나는 게 무섭다'며 제발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남자가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영화 배급사는 이 영화를 시한부 소녀의 청춘 로맨스 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깜찍한 다코타 패닝의 사진과 '지금 이 순간, 사랑하지 않는 당신의 시간이 너무 아. 깝. 다.'는 카피를 바탕체로 쓴 것만 보아도 그렇다. 허나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테사보다, 이름도 나오지 않은 그녀의 아버지만 기억에 남는다.
나의 아버지는 미남이다. 본인 말로는 젊었을 적에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인물이 좋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배우 조재현을 닮은 외모에 젊었을 때 모습이 조금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가끔 스쳐 지나가는 옆모습에서 젊을 때의 미남이 언뜻 보인다
그의 손가락 두 마디가 없다는 걸 안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오른손 인지가 유독 짧아 보여 복숭아를 집던 손을 만져보고는 알게 되었다. 당신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때부터 아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의 그 손가락 사건 이후로 내가 알아낸 것들 이래 봤자 고작 이 정도다.
하나, 그는 말린 쥐포류를 좋아한다.
둘, 그가 귀가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샤워다. 만약 이때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 있다면 굉장히 불편해한다.
셋, 그는 늦게라도 꼭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넷, 그는 졸릴 때는 귓불을 만진다. 그는 집중할 때 턱수염을 만진다.
다섯, 그는 충청도 사투리를 아주 약간 쓴다.
여섯, 그가 교통사고를 낸 적은 딱 한번, 내 막내동생이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넘어오려고 할 때였다.
일곱, 그는 물에 빠진 나를 한 번 구해준 적이 있다.
여덟, 그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 누군가 방해하는걸 매우 싫어한다.
아홉, 그는 한화 이글스의 팬이다.
열, 나를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 같다 (아마도)
다른 모든 것들보다 열 번째 것을 알아내기가 가장 어려웠다. 나머지는 증인과 증거가 명백한데 반해 열 번째 명제는 둘 다 변변치 않았다. 증거라고 해봤자 정황상 유추한 두 건이 있다. '우리 딸들은 괜찮아'라는 말을 취업난으로 성형을 하는 여학생들이 늘어났다는 뉴스 바로 뒤에 했다는 점, 그리고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탄 적이 있다는 점으로 유추한 사실이다. 물론 '우리 딸들은 괜찮아'는 '취업은 할 수 있어'의 뜻으로 말했을 수 있고,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는 했지만 '난 죽기 싫어 너 혼자 죽어'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완벽한 증거가 될 수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엄마는 나와 아빠가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하는 행동을 아빠에게 이입해 보기로 했다. 괜스레 화내는 일이 많아지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온순해진다. 없으면 찾지 않고, 있을 때 반가워 하진 않지만 항상 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옆에 가서 찝쩍거린다. 먹을걸 갑자기 사다 주고 먹지 않으면 서운해한다. 감정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서, 나는 내게 부족한 것이 그의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나만 보면 괜스레 화를 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찝쩝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 준다고 해도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당신이 나를 향해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이 궁금하다. 내가 아무리 추리해도 절대 알 수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