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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Dec 31. 2016

내가 현재 살고있지 않은 인생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음악 
 
이성복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메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내가 이 시를 만난 건 이제 막 술집에 들어갈 수 있던 때였어요. 신분증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술을 먹지 못하던 그런 때 말이에요. 그때 나는 참 오만했어요. 당신도 혹시 그랬나요.
 
십 대의 끝자락에 나는 작은 성공을 이뤘어요 나이대 아이들이   있는  중에는 가장 큰일이라고   있겠네요그럴듯한 곳에 소속되었다는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었어요. 어디 가서도 '똑똑한 사람' 그룹에 들어갔어요. 그래요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은 아마 그때 만들어졌을 거예요. 작은 실수를 해도 사람들을 실망하지 않았거든요. 
 
그랬기에 나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어요. 요술공주 밍키 옷을 입고 장난감을 파는 것도, 길바닥에 앉아 전단지를 주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요. 그 누가 나를 무시할 거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나는 '그런'사람이 아닌걸. 
 
알아요. 고작 그 좋은 학교 뱃지 하나 달았다고 세상이 쉬웠다는 게 당신은 이해되지 않겠죠. 
맞아요. 입학하고 나서 몇 년도 되지 않아 그것이 얼마나 평범한지 알아버렸어요. 그래서 떠났어요. 아주 멀리, 오래.
 
꼬박 열 달 동안 스물두 개의 나라를 다녔어요. 구지 그렇게 했어야 했냐고 물으면  말은 없어요. 그때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거든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나를 마주칠  없을  같았어요. 솔직해질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던 시기였어요. 
 
스물세 살, 다섯 벌의 옷을 배낭에 넣고 떠돌아다니던 시절에 세상은 나에게 열린 창문이었어요. 창문으로 보이는 모든 걸 보고, 느끼고, 경험했어요. 난 날것의 나를 봤어요. 소리 지르는 나, 주저 앉아 우는 나, 비열한 나. 춤추는 나, 수많은 나를. 
 
여행이 끝나고, (아아 그건 한 계절의 짧은 연애와 같았어요되돌아온 나의 나라에서 나는 번듯한 직장을 가졌어요남은 나의 생에  욕심은 없었어요그저 지난 여행에서 만난 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어요. .꿈이 있다면 다정한 할머니로 늙고 싶을 뿐이었어요이제 나도 어른이니까요.
 
그랬던 내가 지금 여기 있어요. 삼십해를 살았지만 삶이 익숙하기는커녕 무서워요지금의 나는 오히려 오만했던 그때를 그리워해요그때의 용기무지에서 나오는 자신감세상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을 다시는 가질 수 없으니까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만난 세상은 내가 알지 못 했던 삶이에요. 숨이 벅찬 중압감구토할  같은 모욕늦은  집에 가는 길에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처럼 나는 흐릿해지기만 해요
난, 벌써 겁쟁이가 되어 버렸어요.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게 아닐까요
대학교에 입학하던 순간여행을 떠나던 순간사원증을 받던 순간에서 멈췄어야 했는지도 몰라요

Zihuatanejo,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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