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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Mar 05. 2017

속사정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 본 적이 있나요?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 본 적이 있나요?


맨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다. 탈의실도 아니고 화장실도 아닌 바로 내 방, 아주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서다. 
낯선 몸. 
둥근 듯, 길쭉한 듯, 동물인 듯 사람인 듯.

뭐, 별거 없네. 하고 생각했다. 

이런 내 몸을 지난주부터 매주 두 번, 한 시간씩 남에게 맡긴다. 그는 나의 굽어 있는 어깨와 막혀 있는 신경을 누르면서 어떤 때는 졸릴 만큼 노곤하게 만들 다 가도 어떤 때는 아픈 자리를 눌러 흠칫 놀라게 한다. 뭉쳤던 자리가 풀리면서 온몸에 온수가 흐르듯 화악, 하면서 피가 돈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으로 내 몸을 정성껏 만지는 그 손을 박제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 마사지가 끝나면 이 손을 잘라서, 떼어 낸 다음 내 베게 밑에 넣어 두고 써야지 - 이렇게 그와 사랑에 빠질락 말락한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나는 왠지 바로 옷을 입고 싶지 않다. 방금까지 귀하게 다뤄진 내 몸을, 그 기분을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어진다.

내가 그에게 감동한 것은 단순히 그가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그가 내 몸을,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 몸에는 나의 역사가 남아 있다. 앞으로 살짝 굽은 어깨는 고된 노동을 말해주며, 다리의 상처는 세 살배기 시절의 사고를 말해준다. 그래서 나의 몸을 정성스레 만지는 그는 단순히 내 몸이 아니라 나의 나이테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쾌락이나 유흥으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진중히 대화하다가 마주치는 눈빛처럼, 나란히 걷다가 어느 순간 속도가 맞는 발걸음처럼 사람이 사람과 맞닿는 순간이다.

일주일에 두 번, 나를 정성스레 만지는 낯선 이의 손을 내가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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