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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리 Aug 25. 2019

명확한 것은 오직 녹음된 시간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포일러 주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러닝 타임 총 143분 중 115분을 차지하는 1부와 28분에 해당하는 2부로 구성된다. 영화를 처음 감상할 때는 1부의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우리는 후반부의 이야기가 2부로 분리되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중반부까지 이어진 이 이야기를 극의 끝까지 가져가서 기어코 마무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왜냐하면 1부의 내용은 마치 어떤 이야기의 중간쯤에 관객들을 데려다 놓고 극을 펼치고 있는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리타(로라 해링)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 극 중 영화감독 저스틴(아담 케셔)에게 펼쳐진 사건들, 그리고 그 배후들에 대한 궁금증을 극의 끝에서는 어떻게든 풀어낼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이야기가 고루하게도 느껴진다. 왜냐하면 1부의 내용 대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숱하게 봐왔던 전형적인 인물과 전형적인 사건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내에게 쫓기는 기억을 잃어버린 미모의 여성, 그 여성을 돕는 순진한 주인공, 배후세력에 의해 협박받고 강요받는 영화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가 개봉된 2001년에도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1부는 할리우드 기존의 이야기 구조들을 재현함으로써 익숙한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악몽을 꾼 사람이 광인을 만나는 이야기, 킬러의 난장 코미디는 내러티브와 하등 상관없는 서브 텍스트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이면서 하나의 정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2부를 통해 알 수 있다.


 1부의 끝은 이러하다. 섹스를 마친 베티와 리타가 잠이 들고 나서 리타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실렌시오’ 뭔가 기억이 난 건지 리타는 베티와 함께 ‘실렌시오’라는 극장을 찾는다. 공연인은 ‘밴드는 없다. 모두 녹음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 환상이다.’와 같은 말을 한다. 가수가 노래를 하다 쓰러지자 베티는 자신의 가방 속에 상자를 발견한다. 베티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열쇠와 색도 같고 구멍 모양도 같다는 것을 알자 둘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베티는 갑자기 사라지고 상자를 열어본 리타도 상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1부에서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어 왔던 이야기의 어디쯤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1부의 인물들이 2부의 동일한 혹은 새로운 인물로 연기하고 있지만 배경과 이야기는 유사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 이야기의 구조를 1부의 전사쯤으로 생각하고 하나는 현실이고 하나는 꿈이라고 여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이상하다. 다이애나의 집에 찾아온 여자는 자신의 물건을 돌려받기 위해 찾아왔고 그것은 1부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봐야 옳다. 1부의 시간과 2부의 시간은 그것이 전사인지 후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1부와 2부를 시간 순서대로 맞춰보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유사한 인물 유사한 사건으로 묶여 있지만 1부와 2부의 관계는 하나의 시간대를 공유하는 복속된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이것들을 완벽히 묶어주는 완전한 고리는 없다. 느슨한 끈들이 뭉쳐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 전체의 형태를 가늠하고 어떤 특수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오직 그것을 감상하는 우리만이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시간은 알지 못하며 불확실하다. 그것은 녹음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녹음된 시간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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