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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경 Jul 17. 2016

마네인듯 마네아닌 피카소

'다른 언어로 새로운 세상을 열다.'

커버 사진 속 두 소녀는 같은 인물일까, 다른 인물일까?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좌: <시녀들> 1656 벨라스케스,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우: <시녀들> 피카소,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가 재해석한 58점의 <시녀들> 中 1점)


피카소는 작품 활동의 말년, 고전회화를 재정리하며 본인만의 스타일로 대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재해석해 나간다. 위의 경우, 17세기를 대표하는 벨라스케스의 대작 <시녀들>을 재해석 한 것. 어느 작품이 피카소의 것인지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단순한 추상현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원작 속 인물들을, 벽에 걸린 그림들을,   을 피카소가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참 재밌다. 정확히 말하면 나로서는 하나하나가 너무도 달라서, 피카소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알제의여인>, 벨라스케스 <메닌느가의 사람들>, 그리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역사적인 대가들의 그림을 재해석 함으로써 과거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아가 진정한 피카소 식의 큐비즘(입체파)을 정리해 나갔다.


*입체파: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관찰하여 분해-재구성하여, 여러 각도에서 본 모양을 한 화면에 표현하는 화법. 세잔의 기하학적 회화 이론에 영향 받았다.


지난 글에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 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여러 번 그려내는 모습을 담아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 작가가 존경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모습을 담아내려 한다. 거장 피카소를 사례를 통해서 말이다.

 


피카소는 특히, 마네의 그림을 곧잘 .


<풀밭 위의 식사> 1836 마네, 파리 오르세미술관


누구나 한번쯤 본 작품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이 작품은 사실 1863년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강하게 받고 <<살전>>에서 낙선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훗날 피카소가 이 작품을 모방 177점의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았으며, 마네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피카소의 재해석으로 마네의 유명세가 더해지게 된 것이다.


피카소는 말년에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재해석한 150개의 드로잉과 27개의 회화작품을 남겼다. 마네의 그림을 재해석함으로써 그가 따랐던 작가에 존경을 표하고, 피카소 본인의 작품 세계를 공고히 했다. 그의 27개 회화 작품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이 작품.


<풀밭 위의 식사> 1960 피카소, 파리 피카소미술관

‘하하, 역시 피카소야’ 생각될만큼 피카소만의 개성이 확연이 묻어나있다.



같은 대상, 다른 언어


같은 대상에서 그림이 시작되었지만, 두 작품을 같은 그림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카소가, 그 특유의 화풍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마치 눈 앞의 열매 하나를 보고 한국인은 ‘사과’라고 하는 반면 미국인은 ‘apple’ 이라고 말본인의 정체성 일부를 드러내듯이 말이다. 피카소  또한 마네의 작품을, 같은 대상이지만 다른 언어로 그려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포인트가 이 작품을 피카소의 것으로 기억되게 만든다. 같은 대상을 다른 언어로 풀어냈기에, 두 작품이 몇 백 년이 지난 후대에 독립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만약 피카소가 마네의 작품을 똑같이 따라 그렸더라면, 그 작품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 모두가 피카소를 아는 이유는, 그의 그림에는 오직 피카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화풍이 있기 때문이다. 그 화풍을 다른 작가의 작품을 모방할때 역시 완벽하게 녹여냈기에, 위의 <풀밭 위의 식사> 작품은 마네 작이 아니라 피카소 작이다. 그는 입체파 화가로서의 개성을 가득 담았다. 면을 분할하여 기존 작품을 단면화,단순화했다. 또한 특유의 ‘多시점’ 구도를 통해 그림 속 인물, 사물들을 상당히 다양한 시점에서 보고 한 그림에 표현해 냈다. 완전히 바뀐형태 때문이었을까, 피카소의 <풀밭 위의 식사>는 외설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다. 더불어, 기존 작품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강한 색채’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만들어낸 ‘재해석’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원작의 면들을 모조리 분할, 해체하는 작업을 거쳐 피카소의 시각으로 재조립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옛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전의 대가들을 모방하려는 무의식은19세기나 20세기에 모든 예술가들의 머리 속에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분야가 미술이든, 음악이든간에 말이다. 어느 장르든지간에, 옛 거장들의 작품을 풍자하고 모방하는 과정에는 고전의 규율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는 고전 규율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표였다. 실제로 피카소는 이 어려운 난제를 잘 풀어 나갔다. 당대 인정받고 있는 고전 양식들을 모방함으로서 회화, 조각, 도자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한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중에 잃지 않았던 것이, 어쩌면 그 과정에 더 확고해졌던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피카소는 대가의 작품들을 재해석 함으로서 어느 양식에도 제한 받지 않는 본인의 스타일을 구축하게 되었다.



각종 위작이 논란이 되는 시대, 재해석의 가치

좌: <알제의 여인들> 들라크루아 / 우: <알제의 여인들> 피카소


2015년 5월 11일 오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은 1억 7935만 5000달러(약 1968억 1721만원·수수료12% 포함)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1955년작인 ‘알제의 여인들’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동명 작품을 피카소가 재해석해 그린 15개 연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피카소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재해석해냄으로써, 들라크루아에 존경을 표함과 동시에 본인의 작품을 원작보다 더 높은 가치로 .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모방이어야 한다.”


위작논란, 표절논란이 여기저기서 많다. 비단 미술 장르에서 만이 아니라, ‘창작’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라면 어디서든 말이다. 표절이 ‘몰래’ 원작을 도용하는 것임에 반해, 의미 있는 모방은 단순 반복을 뛰어 넘어 새로운 창작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피카소가 그러했듯이.


전문용어로 오마주(Homage)가있다. ‘존경’, ‘헌정’을뜻하는 프랑스어로,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을 차용하거나 재해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이 ‘오마주’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가 앞으로 세상에 무궁무진한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한다. 피카소가 이전의 작품들을 재해석하며 전작들이 재조명 받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어느 작품에 녹여도 빛나는 본인만의 색채를 확고히 했듯이 말이다.


궁극적으로, 모방이 전작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빛나기 위해서는 ‘결과’에 그대로 나타나는 모방이 아니라, 본인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에 영감을 받는 모방이어야 한다. 앞서 말했, ‘같은 대상이되, 다른 언어’로 표현된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재해석이고 진정한 오마주이다. 한 대상을 표현하는 다채로운 언어들이 서로를 더 빛낼 수 있길, 기대한다. 지금까지의 언어들도, 앞으로 누군가에 의해 생겨날 새로운 언어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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