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심은 씨앗 세개'
나른한 오후, 농사 일을 마친 두 남녀가 따뜻한 햇볕 아래 꿀 같은 낮잠을 만끽하고 있다. 생생한 색감의 이 작품, 바로, 태양을 사랑하는 작가 고흐의 작품이다. [반 고흐,<낮잠> 1890, 유화]
그렇다면 이 작품을 본 적 있는가?
두 작품 속 내용은 좌우가 대칭되었다는 차이를 제외하고 매우 유사하다. 건초 위에 누워 쉬는 두 인물의 모습, 앞에 놓인 짚신과 농기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건초더미와 소들까지도 말이다. 우연히 유사한 것이 아니다. 고흐가 밀레의 <낮잠>을 모작한 것이다. 밀레를 존경했기에.
많은 이들에게 본인만의 멘토, 우상이 있듯이, 고흐 또한 그러했다. 고흐에게 밀레는 하늘같은 스승이었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생 태오에게 쓴 편지에는 밀레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신학 교육을 듣고 선교사로 활동하던 고흐는 1880년도, 장 프라수아 밀레처럼 노동자 계급을 그리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주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했으며, 특히 에텐과 헤이그 주변의 시골 마을 모습을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드로잉해왔다. 이 과정에서 밀레의 작품들은 공부하는 고흐의 학교이자, 스승이었다.
공부 중, 반 고흐는 밀레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아 그와 같은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그린다. 밀레의 <만종>은 2번, <씨 뿌리는 사람>은 정신질환으로 생레미 요양원에 머물 때 21번 모사했다. 이 작품 <낮잠>의 경우 무려 ‘90번’을 모사했다.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반 고흐.
하지만 그가 완성한 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그림이었다.
첫번째 씨앗, ‘인상주의 열풍’
19세기는 바야흐로 인상주의의 시대. 순간의 모습과 느낌을 생생히 표현하는 것이 최대 고민이었던 때다. 특히 쇠라로 대표되는 점묘법이 유행했다. 고흐는 그러한 시대적 유행에 영향을 받되, 특유의 소용돌이 치는 느낌의 붓질로 극적인 표현을 극대화했다.
두번째 씨앗, ‘일본에서 유입된 ‘판화’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판화양식이 프랑스 미술계를 강타했다. 반고흐는 그 중에서도 풍속화(채색목판화)에 푹빠져, 일본 풍속화를 400장이나 모았다. 직접 따라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일본 판화에 담겨 있는 선명한 색채위주의 배열과 평면적인 채색법을 스스로 체화했다.
*자포니즘(Japonism): 19세기경, 일본이 런던 국제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일본의 공예품과 미술품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때 유럽 사람들 사이에 일본풍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었다.
세번째 씨앗, '노란색과 파란색의 배합'
고흐를 좋아한다면 으레 알고 있는 사실일지 모른다. 유독 노란색과 파란색을 그의 작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두 색은 그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고흐는 희망을 표현하고 싶을 때면 태양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집착적으로 많이 사용했고, 우울함이 그를 지배할 때면 작품을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였다.
밀레로부터 시작했지만 19세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된 고흐. 그의 정체성은 이렇게 형성된다. 밀레와 고흐의 <만종>을 나란히 놓고보니 두 작가의 개성이 너무도 다르다. 본인만의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기까지, 감히 가늠되지 않지만 엄청난 반복 작업과, 생각과, 고민이 끊이지 않았겠구나. 생각 든다.
밀레와 고흐는 시대를 초월해 성공한 스승과 제자인듯하다. 밀레는 후세를 대표할 거장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스승이었고, 고흐는 스승의 그늘에서 완전히 독립한 제자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