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비
오는 일요일 저녁

by 매일매일성장통


" 저 사실 업무 때문에 전화 드린거긴 한데...

잘 지내세요?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한데..."


의외의 적극성이 튀어 나왔다.

공개된 사무실에서의 전화였지만

순간 반짝 일어난 호기심이 목소리마저 한껏 들뜨게 했다.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언제 얘기한번 해요."


의외로 기회가 또르르 굴러왔다.

하긴 별것도 아니고 얘기 한번 하자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괜시리 아무렇지 않은듯 새침하게 반응해 보았지만,

쉽게 찾아온 의외의 만남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살짝 일렁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대학을 처음 들어가던 그 시절.

꽁꽁 싸매고 눈감고 귀닫고 그렇게 오로지 수능만을 향해 달렸던

내 자신을 보상받기 위해, 내 자신을 찾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신규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 소형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촬영을 하던 한 선배가 물었다.


"대학 들어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가요?"

"-사람을 만나는 일이요."

"연애 하고 싶은 거구나?"


왁자지껄 웃음으로 촬영을 마쳤지만, 내가 툭 뱉은 대답에 흠칫 놀랐다.

아.. 나는 사람이 만나고 싶었구나.

연애를 하고 싶은 갈증도 컸지만

그보다 더큰 갈증이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늘 같은 목표, 같은 방향으로만 달리던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늘 고민하던

'다름' 에 대한 당위성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과연 다른 것인지..

나와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그 고민의 일환으로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




북적북적한 단체 모임에서 한 사람을 알기란 쉽지 않다.

1,2학년 때는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던 아이들이

학년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삼삼오오 무리를 만들어갔다.


"이젠 시끄럽게 우르르 못 놀겠어.

좋은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노는게 좋더라고.

우리 늙었나봐..."


20살에서 22살이 되어버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게 새파란 아이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점점 소규모를 이뤄나갔고,


그저 술자리 게임을 즐기며 누가 술을 잘 마시는지가

하루 얘기의 시작이었던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진로와 미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성친구를 접해보지 못했던, 요즘애들과 많이 달랐던

나의 친구들은 모두들 첫 연애의 실패에 한번씩 할퀴어졌고,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름의 고민들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20대의 가치관은 형성되어져 가고 있었고,

나의 가치관 역시

다양한 세계와접점 혹은 자극,

수많은 선택실패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 만남을 통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 결코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호기심의 색채가 바래서, 사람에 치이고 상처받는 일이 많아서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였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을 알아가고, 나와 다른 가치관과 마주하고,

그 다름에 신선한 자극을 느끼기에는..

사람들과의 거리에 점차 선이 느껴졌다.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선들.

감정을 통제하고, 표정을 감추는 것이

직장생활의 생존전략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은

애써 가면을 쓰기 시작했고,

그 가면이 굳어져 어떤것이 가면이고 어떤것이 진실인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게 되어 버린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이 가치관의 공유나 감정의 교류가 아닌

'우리가 여전히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 받는,

서로의 위로에 지나지 않는 만남들로 이루어져 갈때쯤


호기심과 설렘의 색은 바래갔고, 흥미를 잃어갔다.




그 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여느 날이었다면 일요일 저녁, 특히 비가 오는 저녁은

어떤 핑계를 대어서라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한껏 게으름을 부리며

월요일을 위한 충전이라고 자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변화였다.

호기심을 잔뜩 갖게 한 예고편을 보고 난 뒤 영화를 보러가는 설렘처럼

기분좋은 긴장감이 온 몸에 살짝 감돌았다.


무언가 온 몸을 팽팽하게 하는 그 느낌에

마치 온 몸의 주름이 펴지기라도 한 양 한껏 부풀었다.


그렇게 의외의 '그'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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