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짧지만 강렬한 ..

by 매일매일성장통

어느날 불쑥 예상치 않은 타이밍에 그가 들어섰다.


길을 걷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곳 그 어딘가를 서성였던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주선으로 인한 의도된 만남도 아니었고, 공유할 만한 무언가로 인해 서서히 정이 들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그것도 매일매일 매어있는 사무실이라는 공간, 벨소리만 울리면 짜증이 절로 솟는 전화기를 통해

'그'가 툭 튀어나왔다.




그 날은 그간 좀 미뤄뒀던 일을 처리하는 날이었다.

돈을 만지는 일을 하는 탓에, 때론 퇴직, 이직 등으로 떠나버린 직원들에게 반납을 요구하거나

이미 대금을 지불받은 업체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돈을 돌려달라고 해야 할 때가 있다.


내 돈이든 회사 돈이든,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것은 참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업체들의 뻔뻔함을 새삼 느끼며, 오늘은 기필코 반납금을 정리하리라 마음 먹고 전화기를 들었다.

얼마전 퇴직을 해서 업무처리가 남아있는 바로 '그'였다.


'그'를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참 보수적이고 참 재미없는 이 조직에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등단을 했다고 들었고,

서른을 훌쩍 넘어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과감히 파리유학을 떠났다는 말도 들렸다.


그저 '독특하다'라는 느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어 기자를 택했던 그 시절의 열정이 살짝 돋아나

그 사람이 있는 술자리에라도 합석해서 마구마구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이 조적까지 들어오게 된건지,

어떤 결심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건지,

당신이 꿈꾸는 인생은 무엇인지.


그러다 결국 퇴사를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라움과 동시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결코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며,

한 남편이자 한 가정을 이룰 가장의 모습을 꿈꾼다면

아니 최소한 부모의 든든한 아들로 살기를 원했다면,

감히 결단을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며칠간 그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이상한 사람이었다거나, 정신 못차렸다는 의견들도 분분했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그가

그 길을 떠나지 않는 이들에겐 마뜩치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떠난 그와, 그를 평가하는 그들을 보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몇년 전, 고시생으로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가방에 두꺼운 책들을 가득 넣고, 그 책보다 더 무거운 부담을 가득 안고

아침 일찍 한 초등학교 의자에 앉아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의 불합격을 이미 맛보았기에, 시험장 분위기는 익숙했고

그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랄 뿐이었다.


자리에 앉아 조금이나마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이리저리 의자를 몸에 맞춰 보던 순간,


책상 앞 하얀 종이로 붙어있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의 장래희망 : 9급 공무원'


순간 놀라 다시 한번 확인한 그 문구는

분명히 초등학교 2학년 3반

어느 아이의 장래희망을 붙여놓은 것이었다.


과연 그 아이의 장래희망이었을까? 그 아이는 단순히 공무원도 아닌

'9급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어디에서 들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장래희망으로 삼았을까..


그리고 그 책상에 앉아서 그 시험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어디에서 흘러다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이 직업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았을까.



묘하게 씁쓸했다.


시험장이 익숙해질 정도로 시련을 겪어가며 수많이 내 자신에게 다그쳤다


네가 진짜 원하는게 뭐야.

이 길이 니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니.


마치 그 시련들이 확신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끝없이 다그치고, 끝없이 질문하며

그렇게 시험장이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그런 과정 중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내 운명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직업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끝없이 다그쳐가며 다시 나를 그자리에 세운것은


20대에 생각하던 직업관이 많이 변모해 가고 있을 즈음

선택한 길이기에,


안정성이라는 이름 하에

안이함으로 살아가고 싶고,

평범함이라는 이름 하에

다름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혹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직장이라는 공간은 나의 무언갈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아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엔

텅빈 공허함이 찾아 들었다.


그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저 맥주와 TV로 채울 수 없는 무엇이었다.


무언가 시간의 태엽을 마구마구 감아버리는 느낌.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툭 시간이 멈추어 버리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


그 공허함 속에서 그의 이야기들이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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