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그만 하자.. 내가 이제 놓아줄게.. 나같은 놈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래..
술에 얼큰한 그의 말에 오히려 차분해졌다.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
슬픈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으니..
다만 '누나'라는 말에 '쿵'무너졌다.
그렇게 부르기 싫어하던 '누나'라는 단어를 왜 마지막에 내뱉어야 했을까..
그 한 단어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응 잘 지내.."
그냥 담담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함께 할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린 둘다 확신이 없었다.
우리의 미래는
아주 먼 훗날 북유럽으로 이민가자는 그 말처럼
아무런 구체성이 없었다.
그저 흩날리는 단어들로 우리만의 공간을 치장할 뿐..
수많은 약속들과 수많은 밀어들이...
이별 앞의 마지막 순간에 온통 쏟아붓고 싶은
당부와 안부의 말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임을 이제는 알기에
묵묵해질 뿐이었다.
30년 넘게 살다보니 운명이란 것이 인연이라는 것이
점점 더 강하게 믿어진다.
어쩌면 우리가 정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
내부적인 혹은 외부적인 일이 그 길로 가는 길을 계속 붙잡는 느낌.
'결국 너는 갈 수가 없어. 지치고 말거야 '라고 작정하고 덤비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렇지만 '인생은 살아봄직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예상치 않은 행운이, 만남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흔한 광고문구가 갑자기 가슴에 훅 들어오거나,
수천만개의 인터넷 배너 속 어떤 것 하나가 머리속에 떠나지 않는다면
필시 내 운명 속 어딘가 차지하고 있기 떄문이리라.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노력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었고,
정신차려보니 옆에 와 있는 것도 사람이었다.
만약에 내가....
안개가 자욱하게 낀 그 터널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지나온 그 터널을 헤메는 그에게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어서 오라고 지켜 보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함께 그 길을 걸으며, 언제 이 길이 끝날 수 있을지.
때론 함께 좌절하고, 때론 격려하며,그렇게 한발 한발 내디뎠다면
그러면 우린 인연이 될 수 있었을까.
"너무 힘들어. 태어나 처음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했었는데,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는데.
옆에 그걸 지켜봐 줄 사람이 없으니 혼자 할 자신이 없어. 다시 내 옆에 있어줘. 지켜봐 줘"
내면의 아이는 '특별한 아이'가 되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혼자 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서
한발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기뻐해주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불안과 좌절이 그를 덮칠 때
한결같이 용기를 불어넣어주기에
나는 너무 지쳐버렸고
어쩌면 내가 필요한 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없는 아이가 아니라
함께 할 길에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서로 기대고 같이 헤쳐갈 수 있는 어른이라는 걸 깨달아갔다.
그리고 난 나의 '필요'가 더 중요했다.
어쩌면 다시 이런 뜨겁고도 순수한 사랑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사랑에 여러가지 모습이 있는 거라면,
열정과 순수함 뜨거움으로 가득한, 그토록 30대에 그리워 했던 그 사랑.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그가 일깨워 주었다.
단순한 20대와 30대의 만남, 혹은 직장인과 취준생의 만남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뒤덮였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을 그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석같은 '순수함'을 알지 못한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채
살아가는 것은 그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
한번쯤 자신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누군가 품어주었다면,
한번쯤 그를 둘러싼 그 무엇이 아닌
그 자체의 빛을 제대로 봐주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그의 인생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잠시나마 비눗방울이 되어 반짝이는 찰나를 만들어 준 그를
어쩌면 아주 오래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두 발을 딛고, 숨을 고르고, 어디로든 다시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