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진 하고 싶은게 없었는데.. 이제 해 볼거야.
나는 괜찮은데 혹시 주변사람들이 자기 욕하면 어떻게 해..
왜 그런 사람 만나냐고...
내가 걸맞는 사람 되도록 해볼게"
살면서 그토록 예쁜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었다.
특히 서른이 넘어가고, 자기만의 습관, 가치관, 호불호가 명료해질수록
사랑도 결코 누군가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 자신보다 누굴 더 사랑할 순 없기에..
결국 누군가와 내가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이 있다면,
선택은 둘 중의 하나다.
받아들이거나 포기하거나..
그런데 그는 나로 인해 인생을 수정한다고 했다.
단순히 어리기에, 아직 굳어버린 인생의 루트가 없기에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걸맞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니.."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웅크린 그가 느껴져 안쓰러웠다.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도 힘든 세상인데, 누군가로 인해 인생을 결정한다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말리고 싶었다.
혹은 나로 인해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막연히, 진짜 잘 되길 마음으로 빌었다.
정말 이렇게 영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과정을 거쳐
그의 손을 잡고 바닥을 딛고 싶었다.
그러나.. 수많은 풍파가 그의 외피를 단련시켰을지언정
내면엔 자라지 못한 아이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란 놈이 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를 뭘 믿고 기다릴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이야. '
끝없는 자기 비하가 이어졌다. 가뜩이나 불안과 두려움으로 비틀거리는 20대에게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럴 필요 없다고 수차례 말했건만. 그런 과정을 이겨내기에, 자존감을 가지기에
그는 단 한번도 '잘될거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면의 아이는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부쩍 힘들어 하는 모습이 느껴졌고,
슬픈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자존감을 높이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러나 자신감이나 자존감은 의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 본적이 있는 무의식 속 '성취의 기억'과
'넌 아주 특별한 아이'라는 걸 끊임없이 일깨워 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전엔 알지 못했다.
이미 뿌리 내린 자멸감은 세상에 한 발 나아가기로 결심한 순간
그의 발목을 사정없이 붙들었다.
옆에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일으켜 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에 난 너무 지쳐버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