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학교 외에 다른 세상을 접해 본 적 없는 내가
그토록 또렷히 그 단어를 기억하는 건
나와는 다른 세계인것처럼 느껴졌던 뉴스 속 각종 단어들을
몸소 느꼈던 첫경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연일 금모으기 운동, 경제살리기 운동이 계속되었고.
그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던 '타이타닉'을 보고 나오며
가슴 두근거림과 동시에,
'타이타닉' 외화 수입이 금모으기 운동을 의미없게 만든다는 사람들의 말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하나 둘 반 친구들 표정도 어두워졌다.
단순히 어른들의 일이 아니었다.
집이 많이 어려워 진 것 같다는 친구, 매일 부모님이 싸워서 고민이라는 친구.
감옥같이 사회와 격리되어 오로지 대학만이 세상의 전부인 그 곳에도
'IMF'는 강렬하게 파고 들었다.
사회 전체가 혼란이었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사회와 격리된 채 그 시절을 넘긴 것이
지금에와선 참 감사할 따름이었다.
파산과 실직, 자살과 이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 시절을 지냈을 것 같은 '그'의 입에서도
그 단어가 튀어 나왔다.
'IMF'
가게를 하며 화목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가 기억하는 아빠는 엄하지만 따뜻한 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엄마의 빚보증이 가게를 날아가게 했고,
그 후로 계속되던 부모님의 다툼과 때때로 목격되던 폭력.
그렇게 한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렸던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셨고,
홀로 남은 아빠는 형과 그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몹시 추웠다.
가스가 끊겨 이불 속을 드라이기로 데웠던 기억만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 했을 그의 아빠는
결국 어린 아들들을 친척집에 놓고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왠지 이상한 느낌이 그를 사로잡았다.
오늘은 꼭 아빠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느낌.
때로 우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느낌이 이성을 지배하곤 한다.
전화를 받지도 않는 그 옛집으로 어린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열리지 않는 그 문을 포기하고, 담을 넘어 그 집을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펼쳐진 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과감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제는 연민만이 남게 된 아빠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엄마의 재혼을 마주하게 되었고,
낯선 새아빠란 사람과 낯선 형제들을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선 그는,
그 누구도 세상의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했다.
혹여 엄마에게 손을 내밀면, 엄마의 새로운 가정에서 엄마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해서..
학비도, 생활비도 홀로 벌어나갔다.
자연스럽게 늘어간건 눈치였고, 잡다한 지식들이었고..
'가정환경은 결코 성격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시련은 오히려 강인함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이 명제가 나의 가치관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