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참 힘들었다. 쉬운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시작은 그랬다.
'그래 뭐 그냥 막 살지 뭐'
그런데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20대의 열정은 과히 뜨거웠다.
단순히 20대와 30대의 문제도 아니었다.
모든걸 공유하고, 모든걸 함께하고, 매일매일 보고 싶고, 시도떄도 없이 연락하고,
전화기 뜨거워지게 통화하고.....
사랑한다는, 보고싶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야 하는 것이 버거워졌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미 많은것들로 채워진 나만의 공간을 그를 위해 내어놓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늘 연락을 자주 하지 않던 남자들에 서운해 했던 나였다. 그런데 그 연락에 치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정말 별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맞춰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 쯤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스타일인 거니까.
처음으로 사용해보던 애칭도, 수도 없이 내뱉는 사랑한다는 말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하고 싶은게 뭐야? 꿈 같은거 없었어?"
"......없어요 그런거... 그냥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살려고 했어요....
어차피 특별히 하고 싶은게 없어서 가릴 것도 없고 정말 아무거나 할 수 있어요."
'그럴수 있지'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런게 요즘 '사토리 세대'라는 걸까.
돈과 명예, 해외여행과 명품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 득도한 것처럼 아무 욕심없이 살아간다는 그들.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청춘의 패기나 도전은 이미 퇴색되어져 버린 단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길거리에 전단지를 뿌리듯 수백장의 이력서를 뿌려댔다.
심지어 고졸을 우대한다는 문구에 대학졸업사실을 숨기고 원서를 냈던 적도 있었다.
일만 시켜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지만 그 무엇이든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은행에서도, 미장원에서도 첫 대화의 물꼬는 그것이었다.
28살. 그즈음까지 방황하던 난 친구들의 결혼식조차 쉽게 갈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뭐하고 지내?'
그 말이 그렇게 힘든 질문인 거란걸 왜 몰랐을까.
'요샌 일이 많아서 야근에 치여산다고....' '최근에 차를 바꿨다고.. '
이런 것들이 요즘 내가 하고 지내는 것들을 설명하는 것인 줄
그 전엔 알지 못했다.
그런 모임을 참석하고 난 뒤엔 며칠씩 우울함을 앓곤 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직장을 가지고 안가지고, 소속감이 없고 있고가
그저 한끝차이일 뿐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 나이에는
불안감, 두려움이 엄습해 꿈을 꿀 수조차 없게 옥죄어 온다는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정말 하고싶은 것이 없었다.
어린시절조차도..
인생을 계획하거나 꿈꿔본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먹고 사는 일만 할 수 있어도 그걸로 족하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그 이면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무한한 호기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 그의 이야기..
그것은 담담하게 이야기 하기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기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