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면(異面)

by 매일매일성장통

시작은 참 힘들었다. 쉬운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시작은 그랬다.


'그래 뭐 그냥 막 살지 뭐'


그런데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20대의 열정은 과히 뜨거웠다.


단순히 20대와 30대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너무나 뜨겁고 순수하게 내 인생을 파고 들었다.


모든걸 공유하고, 모든걸 함께하고, 매일매일 보고 싶고, 시도떄도 없이 연락하고,

전화기 뜨거워지게 통화하고.....

사랑한다는, 보고싶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야 하는 것이 버거워졌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미 많은것들로 채워진 나만의 공간을 그를 위해 내어놓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늘 연락을 자주 하지 않던 남자들에 서운해 했던 나였다. 그런데 그 연락에 치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정말 별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맞춰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 쯤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스타일인 거니까.


처음으로 사용해보던 애칭도, 수도 없이 내뱉는 사랑한다는 말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게 뭐야? 꿈 같은거 없었어?"


"......없어요 그런거... 그냥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살려고 했어요....

어차피 특별히 하고 싶은게 없어서 가릴 것도 없고 정말 아무거나 할 수 있어요."


'그럴수 있지'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런게 요즘 '사토리 세대'라는 걸까.

돈과 명예, 해외여행과 명품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 득도한 것처럼 아무 욕심없이 살아간다는 그들.

이 사회가 이제 젊은 세대에게 어떤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은 것일까.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청춘의 패기나 도전은 이미 퇴색되어져 버린 단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 또한 20대를 빠져 나오는 과정은 내 열정과 패기를 포기해 가는 과정이었다.


길거리에 전단지를 뿌리듯 수백장의 이력서를 뿌려댔다.

심지어 고졸을 우대한다는 문구에 대학졸업사실을 숨기고 원서를 냈던 적도 있었다.


일만 시켜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지만 그 무엇이든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없다는 건, 소속감이 없다는 건,

보이지 않는 패배자의 낙인이 찍힌 느낌이었다.


어디를 가든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은행에서도, 미장원에서도 첫 대화의 물꼬는 그것이었다.


28살. 그즈음까지 방황하던 난 친구들의 결혼식조차 쉽게 갈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뭐하고 지내?'

그 말이 그렇게 힘든 질문인 거란걸 왜 몰랐을까.

무엇을 하고 지낸다는 대답이 모두 직업과 관련있다는 말인줄 그 전엔 알지 못했다.


'요샌 일이 많아서 야근에 치여산다고....' '최근에 차를 바꿨다고.. '

이런 것들이 요즘 내가 하고 지내는 것들을 설명하는 것인 줄

그 전엔 알지 못했다.


결국 소속감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사람이었고.

그런 모임을 참석하고 난 뒤엔 며칠씩 우울함을 앓곤 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직장을 가지고 안가지고, 소속감이 없고 있고가

그저 한끝차이일 뿐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 나이에는

불안감, 두려움이 엄습해 꿈을 꿀 수조차 없게 옥죄어 온다는것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정말 하고싶은 것이 없었다.


어린시절조차도..

인생을 계획하거나 꿈꿔본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먹고 사는 일만 할 수 있어도 그걸로 족하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그 이면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무한한 호기심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한 그의 이야기..


그것은 담담하게 이야기 하기엔.. 담담하게 이야기를 듣기에도..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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