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맹렬히 더 강렬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떄가 있다.
기본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난 데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
무엇이든 해야 하는 내게
특히 퍼져 버리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진다는 걸
익히 알기에
늘 어느정도의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기 싫음' 이란
진단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무엇이? 왜?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게 만들었단 말인가.
추석연휴기간
자칫 잘못하면 눈깜짝할 사이
긴 휴일이 순식간에 지나갈 수 있는 날이다.
무언가 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며
집에 올라가야 하는 시간도 최대한 늦추었다.
집에 가서도 밀린 쇼핑을 하며
알뜰히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와서였다
서둘러 혼자만의 공간에 와서
엄마에게 한없이 매정한 딸로 남기고 돌아왔건만
집에 돌아오니 뭔가 맥이 빠졌다.
뭔가 알 수 없는 스트레스에 쫓겼던 거 같다.
혼자 술을 마시지 말자 결심했건만
결국 또 슈퍼로 달려갔고
맥주와 과자 등을 잔뜩 사든채 돌아왔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나를 위해 팽팽히 묶어둔 끈들을
살짝 느슨하게 풀어 놓게 된다.
다 이렇게 사는거지 뭐.
아 이런날도 있는거지 뭐.
이런 이유들로 혼자 술을 마시기도 하고,
하루를 낭비하기도 하고
늦게까지 뒹굴거리기도 한다
너무 옭아매다 한번 터지면
어떻게 될지 알기에
어쩌면 내가 날 살살 다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일 뭐 하루 더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딱히 뭐가 힘든건지, 딱히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피곤했고, 갈증났고, 맥이 빠졌다.
그 이유로 한 잔 두 잔 마신 술이
온 몸을 감쌌고
결국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로 직행했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언제부터인가 친척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친척들이 한마디 두마디 던지는 것들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는 걸 알기에
추석 명절 스트레스 주는 말 주고 받지 말자며
현수막까지 걸리는 걸 보면
비단 나의 문제만은 아닌듯 하다
취업이 안될때는
뭐하고 지내냐는 한마다가 비수처럼 박혔고
결혼을 못할때는
얼른 시집가서 애기 낳고 살아야지 라는 말이
웃어넘기기에 참 박힌다
스스로 당당하다 여기면서도
시간시간 애써 나를 다잡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걸 보면
어쩜 그들의 잣대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 모인다는 명절에
혼자만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거린다
명절 증후군 이라는 말처럼
주부들은 스트레스가 급증하고, 이혼율이 치솟으며
싱글들은 해외로 뜨기 바쁘고
학생들은 이런저런 비교에 숨이 막힌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 걸 보면
어쩌면 명절이라는 이름 하에
가족들의 모임이라는 명목하에
가장 가까운 그들에게 공개비판을 받는 자리가
명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나를 놓아버린 탓일까
과하게 마신 술이 하루를 망쳐버렸다
아침부터 일어나기 힘들더니
결국 하루종일 침대 밖에 나갈 수 없게 만들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음은
식욕만을 폭발시켜
공허함을 음식으로 채우기라도 할 것처럼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단 것들로 채우기라도 할 것처럼
먹어대기만 했다
결국 급체와 속쓰림,
급격한 체중증가와 부종
생활리듬이 완전히 깨지는 결과를 낳으며
씁쓸히 생각했다
"역시 예상했던 바군"
한번씩 놓아버릴때마다
엄청난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자책과 후회, 그리고 정신을 차려야 겠다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어쩌면 자기 학대를 하는지도 모른다
나태하고자 하는 욕구, 단것으로 뇌를 마비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맘껏 충족시키며
어쩌면 그 다음날 후회와 자책이 다시 바닥을 치고 일어설
계기가 될거라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다 느낄 것이다.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 구하고, 평범하게 결혼하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고통들을 감내해야 하는 건지
겪어 본 사람들은 절감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순간
정말 바닥이라 생각되는 순간순간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달래가며
그렇게 모두들 살아가고 있는것이 아닐까 한다.
어떤 방법이든 바닥은 치고 일어서야 한다 .
자기 학대이든 자기 연민이든
그러나 바닥을 치고 떨어지고 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