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걷는 출근길에 문득 단풍이 발견된다.
대체 언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한건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을은 유독 짧을텐데 저 단풍이 낙엽이 되고 앙상해지면
곧 겨울이 지나 한 해도 지나고 만다.
1년이라는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느낄때면
찬찬히 떠올려본다.
지난 1년,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변화를 겪었던가.
분명 반복되는 하루였다.
1주일 단위로 시간은 지나갔고
사사로운 약속들과 일정, 게으름으로 주말을 보내고 나면
또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서서 월요일을 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 속에서도
지금 알고 있는 사람을
작년 이 맘때 알지 못했고,
지금 하는 고민을 작년 이맘 때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건
분명 시간은 흘렀고 내 인생에도 일정한 변화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하는 가장 큰 고민.
자꾸만 한국을 뜨고 싶다.
다행히 1년이라는 시간을 휴직을 내도 돌아올 직장이 있으며
(물론 어마어마한 눈치와 욕, 부당함 및 승진의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먹여 살려야 할 가족도 없고,
아직은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건강이 있으니
더 늙기 전에 한번쯤 1년이라는 시간을 외국에서 살아본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이유를 굳이 말하라면
이 시간이 내 인생에 갖다줄 파장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희망?
어학연수라는 그럴듯한 명목도 물론 있지만
그 어학실력이 인생의 틀을 바꿔 줄수도 있고
어학 뿐 아니라 부딪치며 느끼게 될 가치관들과 사람들
그들이 바꿔줄 인생의 변화와
그리고 막연히 그냥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크다
직장인의 로망이 회사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는 것인지
종종 각종 까페 및 티비에서
이직, 퇴직 등을 앞두고 유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러나 놀라운 건 그 고민을 올렸을 때 쏟아지는 리플들의 반응이다.
나 역시 그룹채팅방에 내 고민을 던졌다
'막연히 한국을 1년쯤 떠나서 살아보고 싶은 나, 비정상일까요?'
그 논박은 어마어마했다. 예상외의 반응들이 많았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돌아올 곳이 있는 한
찬성이라는 의견도 있는 반면,
그냥 있는 곳에 만족해야 한다고
개거품을 물며 쏟아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현재 시점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둥.
지금이 그럴 시국이 아니라는 둥.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한다는 둥.
지금 놓치면 영원히 결혼따윈 못할거라는 저주와
그런 허영가득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마치 한국사회 부적응자여서,
현실만족을 못해 허영가득한 삶만 꿈꾸는 사람이어서
떠나기라도 하는냥 쏘아댔다.
어쩌면 맞는말일지도.
나 역시 지르지 않고 고민으로 남겨둔건
두려움이 있어서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해도 지금 시점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에서 이뤄나갈 것들을 떠올리면 기회비용의 가치가 있는지가
의문이긴 하다.
승진, 결혼 등등의 단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정적으로 결혼을 안했기에 과감하게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결혼을 안했기에 더욱 두려워 지는 것도 있다
또 다시 내 나이를 늦추는 결과가 아닐까 해서.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결혼을 해버리면 이런 고민을 할 때
하나의 장벽이 또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는 것에 내 인생에 들어와있는
모두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그들에게 그룹채팅방의 친구들보다
더한 비판과 질타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둘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결혼이라면
과연 그 정도로 희생을 감수할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 결혼이라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외국생활이 꿈같지만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무엇보다 채울수 없는 외로움이 있을 거고,
생각보다 외국인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살갑지도 친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노력을 해도 다가가기 힘든 면도 있고,
경험을 쌓아가도 흥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곳에 나를 놓고, 불편한 환경에 나를 놓아
편안함과 익숙함에 젖어 있는 나를 자극시키고, 괴롭히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났을 때 그 결과가 엄청날 수도 있다
그 때는 단순히 부끄러움, 창피함, 외로움, 힘듦, 이상함, 불편함 등의 감정으로
겪어내야 했던 것들이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나는 변태처럼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야
새로운 나를 발전된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발전을 하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야 하는가.
아직 내 자신에 대한 탐구가 덜 끝났기 때문일까?
무언가 내 자신에게 잠재된 것들이 남아 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희망도 있고
한살한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이상 나를 바꿀 기회가, 더이상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의든 타의든의 이유로 존재하지 않을까봐 두려운 것도 있다
한살이라도 젊을때, 나를 한번 더 공중에 띄어보고
얼마나 높이 날 수 있을까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직은 아직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
안주를 늘 꿈꾸고
결혼이라는 안정된 제도에 들어가지 못해 늘 불안해하면서도
난 한편으론 나를 변화시킬 기회를 잃어갈까봐
또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지.
'한국이 싫어서'라는 장강명 소설 속 여주인공은
스펙만이 인정받는 한국에서 너무나 평범하기에 떠난다.
그리고 모든 외국인들이 그렇듯 각종 불편한 경험들을 하게 되고
남들이 보기에는 별다를게 없지만,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의 내공이 쌓이게 된 걸 발견한다.
한국이 싫어서도 아니고, 내가 싫어서도 아니다.
전혀 알 수 없는 내 미래를 더욱 더 알 수 없게 만들어서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흔들어 보고 싶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내 마음속에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