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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Jan 08. 2016

12월 31일, 무얼 하고 보냈나

2015년 12월 31일. 


누가 달력의 개념을 만들고 시간의 개념을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흘러가는 시간을 24시간으로 쪼개고, 1년을 단위로 묶으면서 

12월 31일은 여느 목요일과 다를 바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특별한 날이 된다. 


2015년의 마지막 날. 


그래서인지 이 날에 무언갈 기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어렸을 때는.. 


20대 초반에는 시간도 많고 열정도 넘치던 때라 

죽이 잘 맞는 친구와 급 해돋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남들 다하는 걸 해봐야 한다는 것처럼 

남들 다 모이는 동해 호미곶에 일출을 보러 떠났고, 


그래야만 나의 우울하고 불안하며 

실수와 좌절이 연속이던 그 한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로운 희망만이 가득한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숙박따윈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늦은 저녁 도착해 그 근처 까페나 식당 근처에서 배회하며 

바닷가에서 벌이는 각종 공연 등 행사를 보다보면 

그렇게 일출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곳을 영화의 공간으로 생각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12월 31일이기에 가능한 낭만적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그 몇 시간을 바닷가에서 버티는 것이 그렇게 힘들줄이야. 

바닷바람은 너무나 매서웠고, 

까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버티기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넘어가면서 주인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결국 헤매다 헤매다 방을 구하고 잠시나마 몸을 녹이기로 결심했건만 

대목을 맞이한 그 곳은 

심지어 식당 주인이 쓰던 쪽방을 잠시 내주는 조건으로 

30만원을 부르기도 했었다. 

서울 유명 호텔을 버금가는 수준으로.. 


결국 바다에서 조금은 떨어진, 아주 허름해 보여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곳으로 

친구와 헤맸고 00여인숙, 00장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데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침내  15000원이라는 합리적(?) 가격의 00여인숙을 발견했고, 

난생 처음 영화 속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서 흔히 볼 법한 

공동 세면대와 다닥다닥 붙은 방. 

방은 바닥에 장판을 깔았을 뿐, 난방이 되지 않아 입김이 나왔고 

깔려있는 이불은 형형색색의 꽃무늬에 담배구멍이 마구 나있었다. 


붉은 백열등 하나로 조명을 켰을 때 

친구와 난 황당 그자체에 웃음만 터져 나왔다. 

결국 코트에 목도리까지 칭칭 맨 채로 그 바닥에 잠시 앉아있다 

일출을 보았고, 

어쨌든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잊지못할 추억을 남긴 채 

돌아왔다. 




세월이 10년이 지나도록 그 추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저지른 일이어도 

어쨌든 잊지 못할 12월 31일을 만들긴 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 중의 하나가 

12월 25일, 12월 31일 등의 기념일에 무덤덤해진다는 것이다. 


피가 들끓던 그 시절이 지나가서인지, 

그 해가 그 해이고 그 날이 그 날이라는 걸 

깨달을 만큼 경험이 쌓인 건지, 


시끌시끌하게 보내는 연말이 아니어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되씹어 보는 일도 

썩 의미있는 일인듯 하다. 




응답하라 1988이  나타났다.이제  그들은 가족으로 뭉쳤다

2015년 12월 31일은 어쩔 수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감기님이 잔뜩 들어 밖에 나가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저 펄펄끓는 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끌어 안고 

약에 취해,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3일이 지나갔다. 


때마침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서인지 

평소 띄엄띄엄 보다 몰아보기를 하고 싶던 

응답하라 1988 시리즈가 그저 설레게 해주었다. 


그 전에 유행하던 응답하라 1997, 1994도 

물론 복고풍의 공감대와 리메이크된 90년대 음악들 

그리고 푸릇푸릇한 연기자들의 활약과 

남편감 찾기라는 모호한 추리(?)형태의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각종 추측이 난무하며 

인기몰이를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영화도 2편 3편이 나오면 

그 인기가 시들해지고, 비슷한 포맷과 

과도한 기대감이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이 시리즈 역시 처음 컨셉이 공개되었을 때 

가장 큰 우려는 

'1988'이라는 것이었다. 


시청자의 주 타겟인 20대 30대 중에는 

심지어 1988년에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그 시절 학창시절을 보내야 공감할 수 있는 

그 공감대가 현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광고, 간식거리, 의상 등 모든 것들이 

시대적 고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고증에 있어도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내놓은 히든 카드는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그 시절을 아무리 공감할 수 없어도 

보편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정서 

'가족의 사랑'이었다. 


어찌보면 다소 진부한 주제일 수 있다. 

너무나 뻔할 수도 있고, 

신파조로 흐르기도 십상이라 

이제 '울어라', '웃어라'고 작정하는 것에 

인색해진 관객들의 반감만 살 수도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그 카드가 그렇게 별거 아닌 에피소드에서 

별거 아닌 일상의 일들에서 

훅 하고 가슴 속을 파고들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때. 글쎄 너희들 막 태어나서 품에 안았을때?" 엄마가 말했다. 난 그저 웃었다. "그렇게 행복한 일이 없었어?"

에피소드 1 - 혼자된 엄마가 아들을 키울 때 


# 혼자 선우와 어린 딸 진주를 키우는 선영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알아서 공부 잘하는 것도 이뻐 죽겠는데 

아들임에도 딸 못지 않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을 

엄마에게 조곤조곤 다 말해주는 자상함을 보이고 

어린 동생 진주를 끔찍히도 이뻐한다. 


다른 엄마들과 평상에 모여 수다를 떨때도 

다른 아줌마들이 모르는 것도 선우를 통해 다 알고 있는 

선영은 아들이 새삼 자랑스러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의 얼굴에 모르던 상처를 발견한다. 

뭐냐고 거듭 물어도 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말을 하며 대답하지 않는다. 


순간 선영은 두려워진다. 

이제 아들이 자기만의 비밀이 생긴 것인가. 

혹여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아닌지. 

무언가 알 수 없는 벽이 생긴 느낌에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남편없이도 잘 키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선우를 위한 삶을 살거라 다짐했다. 

선우가 내 인생의 남편이자 애인이자 아들이며 친구라 생각했다. 

그 아들과의 사이가 불투명해졌다. 

 

"너 왜 엄마한테 숨기는 거야?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는 거야? 

   이 상처는 뭔데?"


원망과 불안이 뒤섞여 다시금 재촉한다. 그러자 어렵게 꺼낸 선우의 말은.. 


   " 그런거 진짜 아니에요. 그냥 면도하다가 비었어요. 

      아직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


순간 왈칵 울음이 터진다. 예상치 못한 아들의 대답에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하는 안도감과 동시에 

아들의 성장에 어떻게 해줄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어떻게 면도를 하는지 몰라, 서툴게 면도질을 하고 

고운 얼굴에 상처를 냈지만 

엄마는 면도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 수가 없다. 

알아서 미리 챙겨줄 수도 없었다. 


다시금 새삼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미안함과 뿌듯함이 공존한다. 

그저 아들을 힘껏 끌어안아 볼 뿐이다. 


별거 아닌 대화로 치부할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엄마의 포옹에, 

불안감에서 안도감과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눈물로 표현했을 때 

선영의 마음이 왜그리 느껴졌는지. 


아들이 남자로 커갈 수록 

아들은 남자로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도닥여주는 일 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이 모든 부모가 자식의 성장 앞에서 

느끼는 부모의 한계라 해도 

선영은 왠지 선우에게 온전한 부모를 갖게 해주지 못한 탓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아마 늘 불안함과 미안함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인지라.. 


아이를 낳아 본 적도, 

남편을 앞세우고 자식을 혼자 건사한 경험 또한 

있을리 만무하지만 

그 엄마의 사랑을 훅 하고 느낄 수 있던 건 


1988년이다 2016년이나 

엄마에 엄마를 이어가며 보여지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쩜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그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했던 

엄마의 상처들이 

새삼 더 아프게 느껴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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