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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Jan 11. 2016

추억, 그리움 그리고 첫사랑

응답하라 시리즈, 토토가의 파워, 그리고 리메이크 열전 등.. 

추억, 복고의 열풍이 진하게 퍼지고 있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 

하이텔과 천리안 접속에 목마르던 그 시절. 

지금은 파란만장한 인생들을 살거나 

훈훈한 옆집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안방극장을 지켜주는 

연예인들의 리즈시절을 되새기며 


같은 세대를 공유한 묘한 세대 동질감을 확인하기도 하고,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숨겨진 꿈과 끼를 내비치기도 하고, 

저 밑바닥 꽁꽁 찌꺼기처럼 붙어있던 

그 시절 첫사랑이 순간, 반짝,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이 이 추억시리즈가 부활한 이유이며, 

진하게 그 열풍을 이어나가는 이유이지 않을까. 


누군가 나에게 추억, 복고라는 코드로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브레인스토밍 해보라고 한다면 

학창시절, 우정, 치기, 열정 등의 단어들이 나오겠지만 

아마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첫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모두에게 어떤 식의 형태로든 

그것이 애잔함이든 풋풋함이든 

그 혹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든 

그 시절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든 


이미 사실관계는 희미할대로 희미해져서 

그가 떠난건지, 내가 떠난건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머릿속에 각색된 형태로 많은 이미지와 느낌만이 

존재하며 


노래든, 드라마든, 날씨든 그것을 환기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있다면 형태없는 감각으로 

분사되는 그것, 첫사랑이다.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가 장만옥을 만났을 때 

왠지 모를 풋풋함에 

온몸이 간질간질해지고 말았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들은 같은 까페 공간안에 있었음에도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한없이 속만 태우기도 한다. 


미국이라는 곳으로 장만옥이 떠났을 때 

그저 먼 공간 어딘가의 곳이었기에 

잊으라는 말로 그렇게 작별할 수 밖에 없었으며, 


천리안과 하이텔의 도입으로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접속하게 된다. 

97년에 유명했던 영화 '접속'처럼.. 


그리고 그렇게 

까페의 문 앞에 달아놓은 종소리마다 

그녀일까, 그녀일까 

마음 조리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타날까.. 

마음 조리다.. 


다시금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준비했던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서로의  품 안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뿐.. 


장만옥의 집 앞에서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최대한 어색하게 첫 포옹을 나누었을 때도 


조심스럽게 학 천마리를 접어 

끝끝내 그녀에게 전달하지 못했을 때도 


그 애잔함과 풋풋함에 

온몸이 간질거리는 민망함과

그 설렘과 두근거림이 

이제는 드라마를 통해서

환기될 수만 있는 것인가 싶은  

아쉬움이 스멀거렸다. 



가끔은 설렘과 두근거림이 

20대 초반에만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인가 싶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결혼'이라는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일'처럼 

되어갔고 


사소한 말투, 눈빛에 

울고 웃었던 

하루의 감정과 하루의 기분이 

좌우했던 

그 시절의 치기가 


떠오르긴 하나 낭비하고 싶지 않은 

에너지가 되어갔다. 


죽을 거 같은 실연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한 자욱만 

남긴 채 

살아가고 있었고, 


수없이 세웠던 미래의 계획과 

수많은 밀어들도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공수표가 되어 버리는 것이 

관계의 현실임을 알기에 


어느 순간 일정한 선이  주위에 둘러 있었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며, 

통제된 이성은 감정까지 통제해, 

설렘도 두근거림도 점차 무뎌져만 갈 뿐이었다. 




하긴 굳이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아니어도 된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오려 할 때, 

혹여 그가 차지하는 내 인생의 부분들로 

내 인생이 흔들리게 될까, 

혹여 내가 알지 못하는 티끌만한 것이라도 

지금껏 일껏 다져온 내 것들을 

흔들어 놓지 않을까 


두려움이 먼저 앞서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그 선을 넘어서기가 

누군가를 그 선 안으로 들이기가 

너무 힘겨운 일이 된다. 


종편 방송에 종횡무진 활동하며 

각종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유인경 기자가 

얼마전 신간을 냈다. 

<내일도 사랑을 할 딸에게>


첫머리에 이런 말이 있었다. 

물가에 서서 혹시나 빠지지 않을까 

발조차 담그지 못하고, 


'이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게 맞을까요'

'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묻고 있는 

딸들에게 


'사랑은 뛰어든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엄마도 사랑이 두려웠단다 

사랑이 두려워지더라도 일단 해보렴.'


응답하라 1988을 보며 

같이 웃고 같이 애태웠던 우리에게 


그 시절 그리웠던건 

이미 희미해져 버린 옛 사랑의 기억이 아니라 


어쩜..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무언지 모르겠지만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 감정이 

두렵고, 신기하더라도 


꺼내어 세게 감정의 민낯을 

부딪쳐 본 그 시절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감성이 들끓고 

낭만적 미래만을 꿈꾸기에 

가능했던 용기들.. 


험해져만 가는 세상에 

홀로 자신을 지켜야 하기에 

발달시켜야 하는 방어 기제는 

어쩔 수 없지만.. 


아주 조금만 방어 기제를 풀어 놓는다면.. 

 

선 안에 누군가 

내 인생의 잔잔함을 깨트린다 해도.. 


그 파문이 내 선을 확장시키고 

그 파문이 잔잔함 속에 숨어있던 

내 본연의 모습을 끌어올릴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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