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결혼에 적합한 사람인가-
누군가라도 붙들고 묻고 싶었다.
이 사람이 맞는거냐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이기에
그 길을 걸었던 선배이며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큰 관점에서 내 고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에게
털어놓기에는
그들이 줄 수 있는 답이
내가 생각하는 답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았고
애꿋은 인터넷에 각종 자료들을 뒤적이며
어쩌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한 거라는
그 진부한 답에 확신을 갖기 위한
발악을 시작했다.
'결혼'과 관련된 각종 까페들
그리고 '결혼'과 '연애'에 관한
각종 서적들
30대에게 고하는 충고
모든 여자들에게 고하는 충고 등
세상엔 참 많은 조언과 충고들이
가득했으며
그들의 말은 어찌보면
한 맥락 안에 있었다
결국 답은 너에게 있으며
모든 것을 다 지우고
그 사람만 남겼을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없다해도 그 사람일때
답은 있는 거라는 말
사실 조금은 뻔하기에
나의 불안함을 지우기에
충분치 않았다
오히려 이 문구가 눈길을 끌엇다.
결혼이란 건,
말하자면 앞으로 저 사람이
네게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온갖 고통을 주게 될 텐데,
그 사람이 주는
다양한 고통과 상처를
네가 참아낼 수 있는지,
그런 고통을 참아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될 거야.
살아가는 동안
상처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어.
하지만 누가 주는 상처를 견딜 것인가는
최소한 네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해야만 해.
그러니까 이 남자가 주는
고통이라면 견디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해.
그러면 최소한 덜 불행할거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은,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면,
때때로 견디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 될 거란 얘기야.”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중 -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어떤 선택이든
그에 맞는 즐거움과 고통은
함께 할 것이다
어쩌면 결혼을 선택했을 때
겪어야 할
즐거움과 고통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질 수도 있다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그 파도를
그 사람이기에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파도 자체를 즐기는 서퍼들처럼
그렇게 즐기며
견뎌 볼 수 있을까.
그 사람이기에
혹은 내가 한 선택이기에
내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크지는 않은 듯 하다
시대가 변해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소수자의 입장으로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만큼 견뎌내야 할
사회적 편견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비소속감의 외로움을
오롯히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일이다
그런 걸 인식해서인지
남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졸업과 취직, 결혼과 출산을
발맞추어 걷는 것이
'사람구실 하며 사는 것'
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건지
서른을 앞둔 어느 해
대부분의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결혼을 했고
내가 결혼과 적합한 인간인가
결혼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등의 의문을 품는 내가 비정상인듯
그렇게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고
당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얼마 후 아이를 낳고
비교적 잘 살아가고 있다
그 속내야 알 리 없다만
프로필 사진마다
페이스 북 사진마다
결혼사진에서 아이사진으로
도배를 해놓는
친구들을 보면
사진 속 신랑 혹은 아이와 함께
참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 역시
결혼이 당연시 되며
결혼 여부를 미장원, 백화점 등의
상관도 없는 사람과의
첫 대면에서조차
자연스럽게 묻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살아왔으면서
어째서 이토록
두려움과 의문을 품고
살아 온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객관화
아니라 믿고 싶은
알지 못하는 트라우마
좀 더 그 본질에
다가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혼을 선택할 때
'이 사람'이 결혼 상대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내'가 결혼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무엇이며
'내'가 그리던 미래에
'결혼'이 삽입되었을 때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이제는 막연한 '결혼'이라는
추상적 명사로써의 고민들을
구체화 시켜 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