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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Jun 10. 2016

결혼, 시작되는 고민들을 위하여(7)

사람들은 늘 사람들 얘기 하는 걸 좋아한다. 

저 사람은 어때, 저 사람은 저래 


혹여 그 사람의 가정사나 과거사, 

혹은 숨기고 싶은 무언가 자극적인 걸 

발견한다면, 


아,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구나 라는 

명목으로 모든 그 사람의 행동들은 

그 깊은 곳 어딘가 숨어있던 

가정사,과거사 등으로 

귀결된다. 


어쩌면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그 사람의 이면에 

나와 같이 아픈 무언가가 있었으면. 


구질구질한 과거가 

혹은 숨기고 싶은 가정사가 있었으면 


그래서 나처럼 아프고 상처받고 똑같았으면 

내가 느끼는 알 수 없는 이 열등감이 

저 사람도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머릿속엔


그다지 행복해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이 없었다 


늘상 일상처럼 반복되는 다툼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강도를 더해갔고, 


고등학교라는 인생의 무거운 시절, 

잔뜩 넣은 책을 짊어지고 나서는 

그 아침의 무게만큼, 

사는 거 자체가 그저 

한숨과 답답함이었던 그 시절

 

하루 중 아주 잠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집에서 

아주 짧은 휴식의 달콤함을 느끼고 싶었건만  


집에 오면 

또다시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 

비난과 고성, 

그런 순간순간들이 서로에게 

상처에 상처로 곪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계를 묶어주었던 

나와 동생은 

이제 멀어지는 그들의 발목을 옭아매고 


그들의 어쩌면 

아직 한창일 수도 있는 

행복할 수 있는 인생을 

무기력한 슬픔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사실 외면하고 싶었다 

외면하고 있었다 

난 내 인생을 살기에도 벅찼고 

어쩜 그들의 인생 그 자체보다 

그저 평온한, 그래서 내 온전한 휴식을 보장하는 

가정을 원했고, 


결정적으로 내가 그리고 내 동생이 

누군가의 발을 옭아매고 

희생의 원인이 되어야 하는 존재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가장 많은 생각과 

자의식이 꿈틀거리던 그 시절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으로 인해 

불행하게 만드는 선택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의 결실이자 

그들의 사랑의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 내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열었고, 


내 의견이 반영된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그들의 새로운 인생은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한건,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학을 들어가고 


내 인생에 처음 누군가 들어와 

그 사람의 공간이 채워지다 

'이제 그만하자'는 말과 함께 

텅 빈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허덕이던 그 시절, 


고작 1년 남짓의 시간이 주었던 

아픔이 이 정도라면


한 사람과 10년이 훌쩍 넘게 

생활을 함께 하고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공간을 함께 채워갔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게 될 때, 


그 상처와 모든 여파들은 

어느정도로 영향을 미치며, 

극복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라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그 여파의 일부인건지 

엄마는 점점 더 씩씩해졌고, 

강해졌으며, 

전보다 더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했다 


엄마는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는 걸 

그리고 두 아이들을 

잘 키워내리라는 걸. 


나 역시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일 뿐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할 거라는 걸. 

내 구실을 잘 해낼 것이며, 

밝고 구김없이 생활할 것이라는 걸.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몫보다 더 많은 

조금은 과잉된 사랑을 주는 

엄마의 보살핌이 

버거웠으면 버거웠지 

내 안에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스스로 강해지고 싶어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어서 

일부러 엄마를 밀어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가고, 

비록 한번도 독신주의를 결심하거나, 

남자혐오증이 있거나 

결코 그런것이 아니었지만 


몇 번의 연애가 실패하고, 

그 안에서 친구들의 연애와 비교해보던 중 


왜 나는 

당연히 일정한 연애기간이 지나면 

결혼을 해야 하고,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당연시 되지 않는 건지, 


콩깍지가 씌어져 그저 살아보고 싶었다는 

부부토크의 대사들과 


마냥 행복한 미래로 부풀어 올랐다는 

신혼시절을 묘사하는 

각종 매체들의 문구가 

와닿지 않는 건지, 


왜 나는 결혼이라는 것이 

아주 긴 협상과 타협이 이루어져야 할 

거대한 병합이거나, 


알 수 없는    

패를 뽑아야 하는데 

그 패에 따라 내 인생이 많이 바뀔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도박쯤으로 생각이 되는건지 


알고 싶었다. 나에 대해. 


그러다 혹시나, 혹여나 

그 고등학교 시절의 잔상들이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리라 믿었던 

그 시절들이 


 과거의 사건, 부모의 영향 등의 

너무나 진부한 이유들이 

주는 여파가 이런 것일까. 


아님 어쩌면 

눈감고 결혼해서 

눈을 뜨는 것보다 


비록 답이 없을지라도, 

뜬구름 잡는 식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지언정 


눈 뜨고 고민해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엇갈리고 있었다. 




아니다. 

어쩜 이 생각들은 

원인규명이라는

 부질없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원인이 무엇인들 어쩌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 필요한 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 것인가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을 하기 위해, 혹은 하고나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가. 


프로이드 식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따위로 

자기 합리화를 찾지 말고, 


어떤 자세를 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뒤돌아 봤을 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즐겨보는 미드의 FBI들처럼  

내 행동분석을 미루어 볼 때, 

내 성향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 등을 

생각해보고  


어떤 인생이 원하는 것인지, 

과연 부딪쳐 볼만한 것인지 

판단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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