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시작되는 고민들을 위하여(8)

by 매일매일성장통

그가 원한 건,

우리 엄마와의 식사자리였다.


그냥 쿨한 식사자리.


먼저 자신의 어머니와의 식사자리를 만들고,

우리 엄마와의 식사자리를 갖고 싶어했다.


변죽이 좋아,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이끌어 갈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나 역시 나와 엄마 사이의 그 누군가가 있어

그 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기가 너무나 싫었지만,


묘했다. 기분이

어찌 생각하면

그래 뭐, 연애할때마다 양쪽 집에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깟 밥한끼 , 누구와 먹으면 어떠리 싶으면서도.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의 방식 안에서

엄마가 어떻게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너무 잘 알거 같아서

자꾸 멈칫멈칫 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은 남자문제도 자유롭게

얘기하기도 한다던데,

나에게 엄마는 아주 건조하거나,

엄마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거나,

엄마의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맞장구치는 일 등이

대화의 전부였다.


엄마에게 늘 이런 나는 서운함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곰살맞은 딸, 살가운 딸

이런 딸을 원한다는 걸 느끼고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을 굳이 댄다면,


엄마는 늘 바쁘고 나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터전에서

힘들게 싸우고 돌아온 엄마에게

모든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나누기엔

너무나 멀고 바쁜 사람이었다.


그저 난 모든 역할을 내가 해내야했고,

또 그게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인생을 사는 거 같았다.




친구가 누군지, 애인은 있는지

이런 것들을 굳이 나누지 않은 건

글쎄.. 엄마에게 이런 친구가 있어.

이런 애인이 있어 라는 말을 남기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그 의미가 더욱 커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란 무엇인가.

사랑은 과연 불변인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심오하게 하며,

인간의 관계와,관계의 가변성에 대해

불안함과 동시에 회의성을 가지고 있던 내가

우정과 사랑 등의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그들의 떠난 빈 자리가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누가 오고 , 누가 떠나도

강하게 두 발로 버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지 큰 의미를 외부적으로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사람이 될지언정,

어느날 문득, 내 기억 저 밑바닥에서

찌꺼기처럼 늘어붙어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이

특히 엄마의 입에서

' 그 사람 아직도 만나는 거지?'라는 말과 함꼐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설명하고,

구구절절 내 감정을 꺼내어보이며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의 굵은 일들을

홀로 결정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헤어짐과 만남의 결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면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 느낌과 직관에 맡기고 싶었다.




안다, 어찌보면 참으로 비겁한 것인지도.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늘 상처받을까 전전긍긍할 정도로

내게 내사람이란 떠날까 두려운 대상일지도 몰랐다.

왜 그렇게 불안해 했는지.

이것 역시

내가 가진 많은 잔상들의 여파인건지.


이렇게 살아온 내가,

연애라는 건 철저히 비밀에 붙인체

마치 남자따위 관심도 없는듯,

그런 일은 내 관심 밖이라는 듯,

결혼을 얘기하는 건

내 인생에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어 버렸으면서.


어느날 문득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그 남자친구가 엄마와 밥을 먹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엄마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쿨하게, 내일 당장 헤어져도 이해하라고

농담을 던진대도,

그다지 쿨하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엄마와의 식사자리를

원한 그 남자의 제안이

싫지만은 않았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저 사람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막연한게 스몰거렸다.


그런 의미라면

내 불편함때문에

혹여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는 이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암호해독처럼

서로에게 오해를 남기느니,


차라리 어쨌거나 내 편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엄마 쪽을 잘 단속하는 편이 날 듯 하다.


너무 오바하지 말 것.

정말 쿨하게 만나줄 것.

설령 내가 내일 당장 헤어진다 해도

절대 이유를 묻지 말 것.

부담 주는 멘트나 질문은 삼갈 것.


만나기도 전에 이리 바리게이트를

치며 말을 꺼냈는데,


엄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당신에게 최고라 여기던 딸이기에,

뭔가 고깝고, 누군가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불안한 의심으로 가득 찰 거라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정말 행복해했다.

누군가 만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가 몸소 보여줬던 것처럼

맞지 않는 결혼이라면,

인생에서 참으로 많은 상처들을 안고 갈거라고,

홀로 당당히 사는 것도 멋진 것이라고.

엄마는 늘 말해왔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대다수의 엄마들이 그렇듯

딸의 곁에 누군가가 있고,

결혼이라는 사회의 안정구역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행복한 일이었을까.


말 그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정말로 엄마에게 효도하는 일일까.


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고,

엄마의 도움이 더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엄마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없을지 몰라도.


심지어 결혼의 아픔을 그리도 겪었던 엄마도

결국은 결혼이라는 관문을 딸이 통과하기,

그리도 바랬단 말일까.


좋기도, 아리송하기도 한 반응이었다.




과연 실제로 둘을 만나게 하면 어떨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고,

어떻게 남자를 만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도 아직 단점이 참 많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도 아니요,

변죽이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는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찌 됐건, 난 그 제안을 엄마에게 던졌고,

이게 말로만 듣던 주사위가 이미 던져졌다인건지..


이제 난 그냥 던져진 주사위가

어디로 굴러가서 어떤 면을 보일지

잠시 지켜봐야할 타이밍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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