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원한 건,
우리 엄마와의 식사자리였다.
그냥 쿨한 식사자리.
먼저 자신의 어머니와의 식사자리를 만들고,
우리 엄마와의 식사자리를 갖고 싶어했다.
변죽이 좋아,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이끌어 갈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나 역시 나와 엄마 사이의 그 누군가가 있어
그 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기가 너무나 싫었지만,
묘했다. 기분이
어찌 생각하면
그래 뭐, 연애할때마다 양쪽 집에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깟 밥한끼 , 누구와 먹으면 어떠리 싶으면서도.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의 방식 안에서
엄마가 어떻게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너무 잘 알거 같아서
자꾸 멈칫멈칫 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은 남자문제도 자유롭게
얘기하기도 한다던데,
나에게 엄마는 아주 건조하거나,
엄마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거나,
엄마의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맞장구치는 일 등이
대화의 전부였다.
엄마에게 늘 이런 나는 서운함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곰살맞은 딸, 살가운 딸
이런 딸을 원한다는 걸 느끼고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을 굳이 댄다면,
엄마는 늘 바쁘고 나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터전에서
힘들게 싸우고 돌아온 엄마에게
모든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나누기엔
너무나 멀고 바쁜 사람이었다.
그저 난 모든 역할을 내가 해내야했고,
또 그게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인생을 사는 거 같았다.
친구가 누군지, 애인은 있는지
이런 것들을 굳이 나누지 않은 건
글쎄.. 엄마에게 이런 친구가 있어.
이런 애인이 있어 라는 말을 남기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그 의미가 더욱 커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란 무엇인가.
사랑은 과연 불변인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심오하게 하며,
인간의 관계와,관계의 가변성에 대해
불안함과 동시에 회의성을 가지고 있던 내가
우정과 사랑 등의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그들의 떠난 빈 자리가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누가 오고 , 누가 떠나도
강하게 두 발로 버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지 큰 의미를 외부적으로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사람이 될지언정,
어느날 문득, 내 기억 저 밑바닥에서
찌꺼기처럼 늘어붙어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이
특히 엄마의 입에서
' 그 사람 아직도 만나는 거지?'라는 말과 함꼐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설명하고,
구구절절 내 감정을 꺼내어보이며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의 굵은 일들을
홀로 결정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헤어짐과 만남의 결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면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 느낌과 직관에 맡기고 싶었다.
안다, 어찌보면 참으로 비겁한 것인지도.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늘 상처받을까 전전긍긍할 정도로
내게 내사람이란 떠날까 두려운 대상일지도 몰랐다.
왜 그렇게 불안해 했는지.
이것 역시
내가 가진 많은 잔상들의 여파인건지.
이렇게 살아온 내가,
연애라는 건 철저히 비밀에 붙인체
마치 남자따위 관심도 없는듯,
그런 일은 내 관심 밖이라는 듯,
결혼을 얘기하는 건
내 인생에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어 버렸으면서.
어느날 문득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그 남자친구가 엄마와 밥을 먹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엄마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쿨하게, 내일 당장 헤어져도 이해하라고
농담을 던진대도,
그다지 쿨하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엄마와의 식사자리를
원한 그 남자의 제안이
싫지만은 않았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저 사람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막연한게 스몰거렸다.
그런 의미라면
내 불편함때문에
혹여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는 이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암호해독처럼
서로에게 오해를 남기느니,
차라리 어쨌거나 내 편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엄마 쪽을 잘 단속하는 편이 날 듯 하다.
너무 오바하지 말 것.
정말 쿨하게 만나줄 것.
설령 내가 내일 당장 헤어진다 해도
절대 이유를 묻지 말 것.
부담 주는 멘트나 질문은 삼갈 것.
만나기도 전에 이리 바리게이트를
치며 말을 꺼냈는데,
엄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당신에게 최고라 여기던 딸이기에,
뭔가 고깝고, 누군가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불안한 의심으로 가득 찰 거라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정말 행복해했다.
누군가 만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가 몸소 보여줬던 것처럼
맞지 않는 결혼이라면,
인생에서 참으로 많은 상처들을 안고 갈거라고,
홀로 당당히 사는 것도 멋진 것이라고.
엄마는 늘 말해왔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대다수의 엄마들이 그렇듯
딸의 곁에 누군가가 있고,
결혼이라는 사회의 안정구역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행복한 일이었을까.
말 그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정말로 엄마에게 효도하는 일일까.
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고,
엄마의 도움이 더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엄마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없을지 몰라도.
심지어 결혼의 아픔을 그리도 겪었던 엄마도
결국은 결혼이라는 관문을 딸이 통과하기,
그리도 바랬단 말일까.
좋기도, 아리송하기도 한 반응이었다.
과연 실제로 둘을 만나게 하면 어떨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고,
어떻게 남자를 만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도 아직 단점이 참 많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도 아니요,
변죽이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는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찌 됐건, 난 그 제안을 엄마에게 던졌고,
이게 말로만 듣던 주사위가 이미 던져졌다인건지..
이제 난 그냥 던져진 주사위가
어디로 굴러가서 어떤 면을 보일지
잠시 지켜봐야할 타이밍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