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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Jul 03. 2016

결혼, 시작되는 고민들을 위하여(8)

그가 원한 건, 

우리 엄마와의 식사자리였다. 


그냥 쿨한 식사자리. 


먼저 자신의 어머니와의 식사자리를 만들고, 

우리 엄마와의 식사자리를 갖고 싶어했다. 


변죽이 좋아,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이끌어 갈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나 역시 나와 엄마 사이의 그 누군가가 있어 

그 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기가 너무나 싫었지만,


묘했다. 기분이

어찌 생각하면 

그래 뭐, 연애할때마다 양쪽 집에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깟 밥한끼 , 누구와 먹으면 어떠리 싶으면서도.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의 방식 안에서 

엄마가 어떻게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너무 잘 알거 같아서 

자꾸 멈칫멈칫 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은 남자문제도 자유롭게 

얘기하기도 한다던데, 

나에게 엄마는 아주 건조하거나, 

엄마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거나, 

엄마의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맞장구치는 일 등이 

대화의 전부였다. 


엄마에게 늘 이런 나는 서운함과 원망의 대상이었다. 

곰살맞은 딸, 살가운 딸 

이런 딸을 원한다는 걸 느끼고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변명을 굳이 댄다면, 


엄마는 늘 바쁘고 나가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생활의 터전에서 

힘들게 싸우고 돌아온 엄마에게 

모든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나누기엔 

너무나 멀고 바쁜 사람이었다. 


그저 난 모든 역할을 내가 해내야했고, 

또 그게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인생을 사는 거 같았다. 




친구가 누군지, 애인은 있는지 

이런 것들을 굳이 나누지 않은 건

글쎄.. 엄마에게 이런 친구가 있어. 

이런 애인이 있어 라는 말을 남기면 

그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그 의미가 더욱 커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란 무엇인가. 

사랑은 과연 불변인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심오하게 하며, 

인간의 관계와,관계의 가변성에 대해 

불안함과 동시에 회의성을 가지고 있던 내가 

우정과 사랑 등의 관계에 큰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그들의 떠난 빈 자리가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누가 오고 , 누가 떠나도 

강하게 두 발로 버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지 큰 의미를 외부적으로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사람이 될지언정, 

어느날 문득, 내 기억 저 밑바닥에서 

찌꺼기처럼 늘어붙어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이 

특히 엄마의 입에서 

' 그 사람 아직도 만나는 거지?'라는 말과 함꼐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설명하고, 

구구절절 내 감정을 꺼내어보이며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의 굵은 일들을 

홀로 결정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헤어짐과 만남의 결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면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 느낌과 직관에 맡기고 싶었다. 




안다, 어찌보면 참으로 비겁한 것인지도.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늘 상처받을까 전전긍긍할 정도로 

내게 내사람이란 떠날까 두려운 대상일지도 몰랐다. 

왜 그렇게 불안해 했는지. 

이것 역시 

내가 가진 많은 잔상들의 여파인건지. 


이렇게 살아온 내가, 

연애라는 건 철저히 비밀에 붙인체 

마치 남자따위 관심도 없는듯, 

그런 일은 내 관심 밖이라는 듯, 

결혼을 얘기하는 건 

내 인생에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어 버렸으면서. 


어느날 문득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그 남자친구가 엄마와 밥을 먹기를 원한다고 

말한다면, 


엄마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쿨하게, 내일 당장 헤어져도 이해하라고 

농담을 던진대도, 

그다지 쿨하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엄마와의 식사자리를 

원한 그 남자의 제안이 

싫지만은 않았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저 사람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막연한게 스몰거렸다. 


그런 의미라면 

내 불편함때문에 

혹여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는 이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암호해독처럼 

서로에게 오해를 남기느니, 


차라리 어쨌거나 내 편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엄마 쪽을 잘 단속하는 편이 날 듯 하다. 


너무 오바하지 말 것. 

정말 쿨하게 만나줄 것. 

설령 내가 내일 당장 헤어진다 해도 

절대 이유를 묻지 말 것. 

부담 주는 멘트나 질문은 삼갈 것. 


만나기도 전에 이리 바리게이트를 

치며 말을 꺼냈는데, 


엄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당신에게 최고라 여기던 딸이기에, 

뭔가 고깝고, 누군가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불안한 의심으로 가득 찰 거라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정말 행복해했다. 

누군가 만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결혼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가 몸소 보여줬던 것처럼 

맞지 않는 결혼이라면, 

인생에서 참으로 많은 상처들을 안고 갈거라고, 

홀로 당당히 사는 것도 멋진 것이라고. 

엄마는 늘 말해왔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대다수의 엄마들이 그렇듯 

딸의 곁에 누군가가 있고, 

결혼이라는 사회의 안정구역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행복한 일이었을까. 


말 그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정말로 엄마에게 효도하는 일일까. 


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고, 

엄마의 도움이 더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엄마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없을지 몰라도. 


심지어 결혼의 아픔을 그리도 겪었던 엄마도 

결국은 결혼이라는 관문을 딸이 통과하기, 

그리도 바랬단 말일까. 


좋기도, 아리송하기도 한 반응이었다. 




과연 실제로 둘을 만나게 하면 어떨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고, 

어떻게 남자를 만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도 아직 단점이 참 많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도 아니요, 

변죽이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는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찌 됐건, 난 그 제안을 엄마에게 던졌고, 

이게 말로만 듣던 주사위가 이미 던져졌다인건지.. 


이제 난 그냥 던져진 주사위가 

어디로 굴러가서 어떤 면을 보일지 

잠시 지켜봐야할 타이밍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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