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들어갈 무렵부터 수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정말 힘들어. 특히 너처럼 나가기 좋아하면 정말 힘들거야. 기본적인 모든 걸 포기해야 해.
먹는 것, 씻는 것, 싸는 것도."
아기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내게 이 모든 말들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어쩌지.
임신하고 찐 살이 그대로여서 거울보기도 싫고,
나갈수도 없어서 집에서만 있어야 하고,
하루종일 우는 아기한테 짜증이 확 날 정도로
모든 것이 다 싫고, 우울하면 어쩌지.
잘 할 수 있을까.
잘 견딜 수 있을까.
게다가 아기가 생기면서 결혼생활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람들의 공통된 조언이 계속됐다.
"사람이 극한에 다다르면 어떤지 깨닫게 돼. 제대로 못자지, 피곤하지, 이제 극한에 다다를거야.
오로지 손내밀 사람이 신랑인데 그마저 단절됨을 느끼면, 진짜 우울하지"
어쩌지. 정말 어렵게 어렵게 용기내서 한 결혼이었는데,
너무 쉽게 생겨버린 이 아기가 결혼생활의 진실한 모습을 보게 하려나.
무서웠다. 그냥 마냥.
아무것도 몰랐기에 오히려 견딜수 있었던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자는 아기가 숨을 쉬나 안쉬나 옆에서 지키고만 있어야 하는
신생아 시절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은 엄청 빨리 지나갔다.
분명 하루종일 별로 하는 것이 없는 거 같은데
하루가 그냥 그냥 똑같은 거 같은데,
뭔가 엄청 피곤하고, 뭔가 엄청 일주일이 금방 왔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눈을 맞추고, 방싯방싯 웃어대는
그 시기가 돌아왔다.
6개월.
그저 신기했다. 자기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손을 쓰기 시작했고,
내가 엄마인지 알기는 하는 건지 눈이 마주치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안보이면 소리를 지르거나,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점차 크게.
빨리 와서 내 옆에 있으라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듯..
그런데..
더욱더 신기한건 나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안보인다고, 자기를 안아달라고
이렇게 울었던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의 세계에 나밖에 없는 사람은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내가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안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는 자기의 세계를 나아가겠지만,
영원히 바꿀 수 없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혹시나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갖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상하게 감동이었다.
힘들다는 느낌보다, 감동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게 너무 신기했다.
"정말? 너같은 사람 처음봤어"
오랜만에 비슷한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나의 이런말을 듣더니 이런 반응은 처음이란다.
나도 신기했다.
어쩜 이 아이를 낳고 나는 내가 애정결핍이 아니었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볼만큼..
더 신기한건 하루에도 몇번 진심으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사랑해"라는 말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올때
밖으로 내뱉지 않고 견딜 수 없을 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이
"사랑해"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은 표현이라고,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해야
저절로 사랑도 더욱 생길거라며
신랑한테 듣는 "사랑해"를 강요하면서,
정작 나는 그 한마디 가진 말의 위력을 너무 크게 부여한 탓인지,
쉽사리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하루종일 아이를 안으며
"사랑해"라는 말이 마구 튀어나왔다.
아이를 재우며, 자꾸 눈물이 났다.
이렇게 해맑은 아이가 앞으로
견뎌내야 할 수많은 시련들, 고민들,
성장통들이 자꾸 벌써 아팠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직장동료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믿는 나이지만
제법 직장동료라기보다는 친구가 되고 싶은 동생이었다.
승진을 앞두고 육아휴직을 해야만 했던 내가 안타까웠는지,
"나와서 승진하고 다시 들어가. 너무 아까워.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릴텐데"
지난 6개월
이 아이와 함께 생애 처음 맛보는 모든 감정에 파묻혀 꺠닫지 못했지만,
문득 내 안의 욕심이 꿈틀했다.
"그래, 아이가 중요하긴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또 휴직을 한다 하더라도, 일단 나가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마음이 무거웠다. 어쨌든 준비라는 것이 필요했고,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도 바늘구멍이라던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리가 나면 연락을 바로 달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지금은 자리가 안날때라는 말에 어쩌면 한편으로는
'그래 아직은 나갈떄가 아니야' 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나보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가 하나 빈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마치 마감임박이라는 홈쇼핑 멘트처럼
긴박하게 결정해야 할 거 같은 불안감을 심어주었고,
그렇게 나는 어린이집에 원서를 쓰고 말았다.
그래 일단은 보내보자.
그렇게 원서를 쓰고 돌아나오며,
어디 멀리 보내는 것도 아닌데,
뭐가 어떻게 된것도 아닌데,
앞으로 몇달의 여유가 아직 있는데..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이는 아주 잘 적응 할 거 같은데,
워낙에 사람들을 좋아하고,
어쩌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때라
더 쉽게 적응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적응을 못할 거 같았다.
어쩌면 나밖에 모르고, 내가 보여야 하고,
나만이 전부인 이른바 엄마껌딱지 아기가
나는 무척 좋았나보다.
아들들은 조금만 커도 엄마랑 대화를 잘 안한다던데,
어쩜 지금 이시간이
이 아이가 비록 기억 못 할 시간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 아이와의 오롯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 보여주는 이 예쁜 웃음과,
이 예쁜 행동들 표정들 하나하나가
이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수도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거 같았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적응이 필요한건 아이가 아니라 나일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문득 전화를 걸어 물었다.
"언니, 결혼하니까 좋아? 애기를 꼭 낳아야 할까?"
그 물음에 갑자기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있지. 아기를 낳으니까 사랑이 뭔지 알거 같아. 이런게 사랑이구나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