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일매일성장통 May 24. 2017

현재의 욕망을
미래의 희망과 바꾸다

-어쩌면 그래서 가능한 일-

20대의 나를 이력서에 적으라고 한다면

몇 줄의 직장과 몇 줄의 자격증이

요즘 20대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긴 20대 어느날 면접을 보러 간 어느 회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던 것도 같다.

"딱히 이력서에 볼 게 없네요'


그렇다고 나의 20대를 딱히 볼 거 없고, 딱히 내세울 거 없다고 하기에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20대에 가장 많이 컸던 것 같고

20대를 가장 20대 답게 보내지 않았나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여행'이었다.

참으로 얄궂게도

처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경험하게 된 건

대학 방학때가 아닌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 2월이었다.


대체 그 긴 대학 방학시절을 뭐하고

그저 빈둥빈둥 친구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우르르 다니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 대학을 졸업하던 때

여행을 떠났던 건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그 때 떠난 첫 유럽여행이

나의 방랑의 불을 지폈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직장을 이직하는 그 몇 달 안에

마치 떠나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떠나기 위해 직장을 옮기는 것인양

벌고 떠나고 벌고 떠나고를 반복했다.


아슬아슬하게 시대를 잘 타고난 탓이지

요즘 같은 취업대란에 한마디로 '미친짓'이었다.




아무튼 그 여행이

내 삶의 밑거름이자 많은 생각의 변화들을 가져왔다고

단언컨대 말할 수 있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그 방랑병은 30대가 되어도, 아이가 태어나서도

 여전히 꿈틀거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임신을 했을때도,

아이가 태어나면 여행도 못간다며

여기저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녔고

심지어 태교여행도 대만으로 아주 꽉찬 일정을 소화했었다.


그러나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꿈꾼다는 건 정말 꿈같은 얘기였다.


집 밖에 나홀로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벅찬일이어서,

아이가 컨디션이 괜찮은지 살펴야 하고

밥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컨디션을 좋게 만들었다가도

잠이 들어버리거나 금새 짜증을 내며 울기 시작하면

30분의 짧은 집 앞 산책도 포기해야만 했다.


집에 있는 걸 좀이 쑤셔하던 나에게

육아의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단연 이런 점이었다.


사실 아이를 어르고 달래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주변에 핀 꽃이, 푸르른 여름 풍경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꽃가루가 아이에게 들어가지 않은지

아직은 바람이 제법 차지 않은지

아이의 얼굴만 연신 살피게 된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나빠서

오늘은 비가 와서

나갈 수가 없는 내가

그나마 여행의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은


몇년 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다리가 여물고

세상에 관심이 많아질 때

같이 떠날 여행지를

검색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마치 당장 다음주에 떠날것처럼

구체적으로 이런 저런 정보를 찾다보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혼자 떠나던 혹은 둘이 떠나던 여행과

얼마나 다른 건지 얼마나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지

새삼 느끼게 하지만

어쩌면 그 귀찮음들이

새로운 여행의 형태인것처럼

계획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곤 한다.




육아휴직을 내던 무렵

주변의 직장동료들,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런말을 했다.


"직장다니는 게 훨씬 낫다는 걸 꺠달을 거야"

"니 성격상 집에 답답해서 못 있을걸"


헬육아, 독박육아 등의 무서운 단어들과

산후우울증이 불러오는 무서운 사건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면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길래'라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인지


가끔 '뭐 집에 있는 것도 괜찮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여 주변에서

"둘째는 언제 낳냐"라는 질문에

지금 여기서 둘째를 낳게 되면


복직 후 몇년 뒤에 또 휴직을 해야 하고

그 안에 승진을 할 수 있을 건지

벌써 승진과 거리가 멀어져

동기들과 갭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아닌지


한국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라는 것이

직장에서 얼마나 불리한 건지

내심 분개하게 된다.


결국 난 돌아갈 곳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돌아갈 곳이 없었다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아이와 집에 있는 시간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면

'있을만 하네'라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


사실 여행의 가장 큰 묘미도 거기에 있다.


여행이 일상이 아닌 일탈로 간직되기에,

반복되고 무료한 듯한 일상이 버티고 있기에


새로운 일탈 새로운 장소 새로운 내가

더욱 짜릿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정신없던 직장생활이 있었기에

현재의 늦잠에 감사하기도 하고

현재의 집순이 생활에 답답하면서도

미래의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결국 현재를 버티게 하는 건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을

 계획하고 꿈꾸는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는 아이와 함께

그 꿈을 꾸어나갈 수 있음에

오늘도 마치 내일 여행을 떠날 것처럼

신나게 계획을 세워본다.


어쩌면 내가 이미 보고 경험했던 장소도

새로운 눈으로 신기하게 바라볼 수 있기에


갈 수 있는 장소는 무한정 늘어날 것이며

추억도 나날이 쌓여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오랜만의 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