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새로운 고민의 시작-
아주 오랜만에 이 곳에 들어왔다.
사실 무언가 끄적이고 싶은 욕구는 늘 있었다.
그런데 무언갈 생각하고, 끄적이고, 되씹기에
내 인생의 변화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혹은 각종 매스컴과 서적 속에서
정말 지독하게 고민하고 걱정했던
'결혼'이라는 거사를
오히려 너무 담담하고 무심하게 결정했고,
'결혼' 뒤에 따르는 '아이'라는 명제가
미처 고민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찾아왔다.
마치 이제 고민은 하지 말고 부딪치고 느끼고
살아보라는 계시인것처럼..
우리는 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산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많이 쓰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성장시킨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자칭 감정의 과잉이라 부를 수 있는 20대와
고민과 두려움이 넘쳐났던 30대 초반을 보내면서
나의 넘칠듯한 감정과 생각들이
나의 인생에 이바지 한것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수험생활을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 데에
최대의 적이 감정의 기복이라는 걸 익히 알 것이다.
사회생활을 한번이라도 해 보았다면
직장동료와의 관계, 조직문화, 그 속에서의 나의 존재감 등에 대한
센시티브함이 직장내 부적응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주어진 일만 생각하고,
슬프고 짜증나면 술 한잔 마시며
"아 그래 털어털어. 한 잔 마시고 잊는거야."
라며 흥건한 술자리를 여가이자 취미이자 일자리의 연속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얼마나 이로운 것인지...
그래서인지 무언가 스피디하게 내 인생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굳이 꾹꾹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달려 보고 싶었다. 사실 그래야 했다.
그래야만 이 변화들을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종일 안고 있어야만 했던 아이가
가만히 뉘어놓으면 한두시간 정도 잠을 자기 시작하고,
그런 아이를 보며 그 짧은 여유에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나에게서 독립해나가는 첫 걸음인가 하는
괜한 서운함이 밀려오면서
이런 감정들을 흘려보내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24시간 안고, 작고 큰 육아정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아이의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고,
육아일기를 써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들이 하는 기록은 때로는 육아용품들의 마케팅 일환이기도 하고,
말못하는 아이와 종일 있어야 하는 엄마들의 소통의 창이기도 하고
훗날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보이기 위한 훈장이기도 할 것이다.
아쉽게도 난 그닥 훌륭한 엄마가 못 되어서인지
아이의 발달 상황을 매일매일 기록할 열의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결혼'을 앞두고 빡세게 했던 고민들이
오히려 담담하게 시작한 결혼생활을
비교적 평화롭게 이어지게 했던 것처럼
'아이'를 가지고 낳고 기르며 느끼게 될 많은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나만의 주관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어야
'아이'를 통해 겪게 될 많은 변화들과
포기해야 할 많은 것들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돌이켜보면,
'결혼'을 마치고 숨가쁘게 달려
내 속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을때
배가 점점 불러오고
아이가 점차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내게 '쿵쿵' 인사할때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수 있을것만 같은
분만의 시간을 거쳐
아이를 품에 안았을때
너무나 작아서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혹시나 숨을 안쉴까
밤새 숨죽여 지켜보아야 할때
밤낮이 바뀌어
인간의 몸이 수면부족일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여실히 느끼게 했을때
그러다 차츰 울음이 잦아들고
내 눈을 맞추고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을 때
그 순간순간의 느낌과 복잡미묘한 감정
어쩌면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호르몬 과다에 의한 것이라 탓하고 싶은
과한 감정의 기복들을
꾹꾹 이 속에 눌러담아
'아이'로 인해 생길 많은 내 인생의 파장들에
밑거름으로 쓰고 싶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감정들을 늘어놓을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감정의 기복들을 애써 심호흡하며
꾹꾹 누른채 단순하게
앞으로만 나아가고도 싶었다.
어쨌든 잠시의 여유가 생기고
다시 이렇게 돌아와
다시 내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걸 보면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야,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행복의 기준을 낮추어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이 가슴벅참과 이 서운함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늘 내채해 있었나보다.
나만을 바라보는 요 작고 꼬물거리는 놈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모르겠지만
비슷비슷한 육아의 일상 중
매일매일 달라질 내 감정들을 끄적이기 위해
나는 이곳에 자주 머무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