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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May 05. 2018

'결혼'과 '이혼' 사이

이혼이라는 것이 더이상 꾹꾹 숨겨야만 하는 

치부가 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 역시

단지 혼자가 낫다는 확신이 섬에 따른 결정일 뿐,

비난받아야 하거나 숨겨야 하는 수치가 아니라는 생각은

사실 결혼전부터 해왔던 생각이었다.


다만, 결혼을 하고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이혼을 하고 안하고는 그런 생각들이

 실행에 옮겨질만큼 강하고 견고하게

다져지고 안 다져지고의 차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관문을 통과했음에도

감정이 떄로는 이성을 통제해버리고,

뇌구조 자체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인지


별거 아닌 말들,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말이나 행동이

떄로는 비수가 되어서

상대방을 비틀거리게 하고,


나에게는 너무 사소한 것이기에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다른 사람은

별거 아닌 사소한 걸로 너무 유난스러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채 지울 수 없기에,

그렇게 그렇게

둘의 간극이 좁혀지기가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날도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막 하게 된 나는

전보다 더욱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고,


오히려 복직 전에는

'워킹맘의 하루'에 대해 무시무시한 말들을 너무 들어서인지

예상치 않은 일들이 마구마구 일어나

나의 삶을 황폐화 시키지 않을까 잔뜩 겁먹었는데,


칼같이 퇴근을 하고 미친듯한 주차를 마친 후

종종걸음으로 어린이집에 달려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안아들고

집에 오면서


어쩌면 이렇게 할일들이 많은 나날들이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고,


어쩌면 일에서도 아이에게도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이렇게 나를 찾고 기다리는 아이는 금방 자라나

내 품을 떠나갈테고,,


일을 하고 싶어도 찾아주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면

이제는 어느정도 숙달되고 이른바 '짬'이라는 것이 생겨서

적당히 나의 생활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지금의 위치가

새삼 감사했다.


집에 도달하면 해야할 집안일들이 쌓여있겠지만

하기 싫으면 까짓 더러운채로 살면 되고,


매 주마다 아이와 어디를 갈까 찾으며 행복해 하고,

아직은 조금 먼 얘기지만

아이가 크면 함꼐 떠날 여행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하기도 하는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길목

색색으로 피어난 꽃들과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더욱 더 그런 생각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복직이후 나름 퇴근을 일찍 하기 시작한

그가 들어섰고,

입술에 크게 수포가 올라왔고,

잠을 잘 못자서

머리가 핑글핑글 돈다며

소파에 누워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 진짜 너무 힘들다. 원래 이렇게 인생이 힘든건가. 회사에서도 일, 집에와도 편히 못쉬고. 아.. "


어쩌면 그는 오늘이 힘든 하루였는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주어지는 일들이 어깨를 짓눌렀는지도..

크게 올라온 수포가 그의 피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고,

뭔가 한다고 하는데 마음에 썩 안들어하는 듯한 내 모습에

더욱더 어리광 비슷한 푸념을 늘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해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그날은 너무 슬프게 들렸다.


나에겐 지금 이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그리워할

행복한 순간들인 거 같은데...


"아빠, 아빠" 하면서 아빠 주위를 맴도는 아이가

주말만 되면 여기 저기 다니며 추억을 만들고 싶어하는 내가


결혼 전처럼 그냥 편하게 뒹굴거리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다가

저녁이 되면 좀비처럼 일어나 여기저기 술자리를 찾아보고

그렇게 술을 마시고 쓰러져서 잠이 드는 그런 주말을 꿈꾸는

그에게..


짐스러운 존재인건가... 그냥 힘든 존재들.. 힘든 시간들인가..




너무 혼자 생각의 끝을 달리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이미 감성이 이성을 통제하기 시작한 나에게


아프다는 그의 말도, 힘들다는 그의 말도

서운하게만 들렸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안 그는

짜증이 난건지,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건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자리를 피했고


그렇게 홀로 아이를 재우면서

방긋 방긋 웃고 있는 아이에게

잘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정말 별거 아닌데..

이렇게 별거 아닌 진짜 남한테 말하기도 사소한 것들로

한번 삐끗하게 되다가

겉잡을 수 없이 서로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이혼이 되는 거구나..


오해의 오해의 오해를 막기 위해

내가 오늘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내가 얼마나 행복하다 생각했고,

인생이 힘들다는 그 말이 얼마나 슬프게 들렸는지

말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보다 글이 더 자신있는 나였기에

 제법 긴 톡을 보냈고


정말 다행히,

마음이 여리디 여린 그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복잡미묘한 내 감정을


'미안해. 앞으로 내가 잘할게용'

이라는 짧은 말과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받아들여주었다.



어쩌면 그는 다 이해를 못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하루를 보냈고, 다른 감정의 사이클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감정의 구비구비들을 이해받기를 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해를 못하면 어떻고, 잘 모르면 어떻겠는가.

어찌됐든 서운하면 서운한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난대로

계속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고,


비록 정말 그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상황들을 감정들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아, 그런 하루였구나'

이해하려 애쓰는 그 마음들이


한번 벌어지기 시작하면 자꾸만 반대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감정의 간극들을 메워나가며 

이 결혼생활들을 유지시켜주지 않을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켜켜히 쌓여

세월의 힘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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