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이야기(1)
그녀가 3살이 될 무렵,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일찍히 말이 터져, 못하는 말이 없었으며, 낱말카드로 시작한 한글공부도 곧잘 해냈다.
첫 아이인지라 모든게 신기하고 모든게 설렜던 엄마는
그 당시 유행이었던 암산과 주판, 천자문 떼기 등 많은 것들을 시도했고,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흡수할 수 있을 거 같은 스폰지처럼
그런 엄마를 충분히 만족시킬 정도로 흡수시켰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엄마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인정과 칭찬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어 어릴적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에도
그녀가 또렷히 기억하는 한 가지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수업시간이다.
한 반에 65명이 빽빽히 들어앉은 교실에서
모든 아이들은 자를 가지고 밑줄 긋기를 하고 있었다.
얼굴도 잘 기억안나는 담임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비좁은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삐뚤 뺴뚤한 밑줄들을 살펴 보고 있었고,
누군가의 공책을 발견하곤 그 공책을 높이 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똑바로 밑줄 그으면 돼요."
순간 그녀는 그 공책의 주인공이 너무 부러웠다.
내 공책도 높이 들려 인정받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집에서 밑줄 긋기 연습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은 밑줄긋기를 다시 시작하셨고
드디어 내 공책 옆으로 오신 선생님은 내 공책을 높이 쳐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그 날 무슨 옷을 입었는지, 옆에 누가 앉아있었는지
선생님의 얼굴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의 뿌듯한 그 기분은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이제 초등학생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친구들이
요즘 초등학생들의 사교육에 대해
한창 열을 올려 얘기할 때,
그녀가 학창시절 공부를 잘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하다 그 뿌듯함을 기억해냈다.
그 성취감과 인정들이 알게 모르게
그녀의 자존감을 만들어갔고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만들지 않았을까 했다.
그렇게 그녀는 엄마에겐 자랑스러운 딸로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애로 인정받으며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때
학창시절의 기억은 그다지 뚜렷히 남아있지 않다.
누군가의 인정 아래 '착한 아이'로 살아간 그녀는
부모의 기대와 학교의 제도아래 '순응'만이 살 길이라 생각해서인지
별다른 의구심 없이 살아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 시절은
진짜 '내'가 아닌 시절이었고
눈막고 귀막고 시키는대로 달려가던 '경주마'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