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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Nov 22. 2019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3)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가 되는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낯선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 직업, 사는 지역 몇 가지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어쩐지 평가당하는 기분이다. 나이에 맞게 직업은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애는 있는지. 

직업이 어떠하면 성격이 어떨것 같고, 사는 지역이 그곳이면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을지 

왠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미용실이 불편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 신상정보를 술술 말해야 하는 

그런 자리. 이런 저런 사적인 질문을 마구 해대고 그에 맞는 적당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서비스인것 처럼 되어버리는 그런 자리. 


그래서 가끔 미용실에서, 시장에서, 부동산에서, 내가 누구인지 딱히 궁금하지 않지만 

마땅히 시간 때우기가 무료해 해대는 질문에 전혀 다른 나를 만들곤 한다. 

다른 직업, 다른 나이. 나름 기분이 색다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여행을 떠나 마주치는 , 사실 전혀 다시 마주칠 가능성이 없을 거 같은 사람에게 

다른 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저 다른 나이와 다른 직업을 대었을 뿐인데, 

나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 자체가 다른 기분이다. 


종종 여행을 혼자 다니곤 했다. 누군가와 함께 떠나면 끊임없이 사용하게 되는 모국어만큼 

한국에서의 나를 버릴수 없다. 

동행자가 있기에 현지의 그 누군가와의 교류 역시 차단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동행자와의 추억을 얻는 대신, 새로운 나와의 추억은 잃는 셈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때로 누군가와 말 한마디 나눌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외국인이라면 그가 보는 나, 그가 묻는 것들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은 빈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아니라,

북한에 있는 곳인지, 남한에 있는 곳인지로 가늠되기도 하고,

내 나이는 조금 많이 깎아서 말해도 그보다 더 어리게 보았다는 리액션을 보인다. 

심지어 내 직업은 나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그저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혹은 그저 나이, 직업, 지역과 무관한 하나의 한국인으로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잘 모르는 나라 한국인일뿐이고, 

여행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머물 예정인지, 어떤 여행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이런 질문과 대답을 나누게 된다. 


희한한 일이다.

한국에선 못입던 옷도 과감히 입을 수 있을 거 같고,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하는 나는 조금 다른 나로 느껴진다.

여러가지 잣대에서 벗어나 내 안에 숨겨놓았던 또 다른 나들을

마음껏 풀어놓는 느낌이다. 여행을 떠나면..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자기 결정은 통제력과 관련이 있다. ..(중략)...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했을 때,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는 사람들이 있다.

계획 자체를 스트레스 받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여행이 결코 즐겁다 말할 수 없지만

계획 자체를 세우는 것 만으로도 이미 여행을 떠난 듯 기분이 붕 뜨는 사람이 있다면

계획부터가 이미 여행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사실 정확한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우리 사는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결코 아니듯

여행이란 아무리 철저한 사전조사를 했다 할지라도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불쑥 불쑥 생기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자이다.

낮이 되면 떠나야 할 곳과

밤이 되면 머무를 곳 정도는 정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머무를 시간과

사용할 수 있는 한정된 예산이 이미 정해져 있다.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 오는 여행이니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과 돈을 사용할 수 있다.

거기서 얻는 만족감이 기대에 미칠수도 못미칠수도 있지만,

어찌됐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순간

모든 일들은 아름다운 일들로 미화되어 추억으로 변한다.


사실 뚜렷한 목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느끼고 즐기고 행복하면 될 뿐.

그 사소하게 느꼈던 바람과, 공기와, 사람들의 미소가

그 모든것들이 여행의 즐거움이고 그것이 여행의 목적일 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사소한 경험이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인생의 리셋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어쩌면 여행지에서 철저히 혼자 결정하고 혼자 떠나던

자신의 의지로 모든걸 해내야 하는 그 일들이

그리고 그렇게 떠난 그 길에서 마주친 모든 것들이

계속 살아 가라고, 계속 걸어 가라고,

세상은 넓고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고

꾸준히 걷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에서, 스치는 바람에서, 따뜻한 공기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할 거라고.

그냥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인생인거라고.

여행은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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