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늘 친구관계가 고민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유달리 감수성이 넘치던 시절이었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울 만큼
여자아이들은 무리를 만들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했다.
소풍을 가거나, 정해진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가게 되면
누구와 함께 앉을 사람, 같이 밥 먹을 사람, 같이 갈 사람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를 만드는 게, 비단 나에게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학기초 단짝이라 불리는 그런 누군가를 만드는 일은
꽤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나와 단짝이던 아이가, 어느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더 친해지게 되고
둘씩 앉아야만 하는 자리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앉게 된다면
그 아이에 대한 배신감보다 내가 이제 단짝이 없다는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유권 다툼이
학창시절 교실 안에서는 난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마음이 통하고, 진짜 관심사가 같고,
진짜 같이 웃을 수 있는 그런 누군가를
진짜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
보여지기 위해, 내가 왕따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단짝을 만들어야 하고, 무리에 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관심도 없는 일에 호들갑을 떨고
웃기지도 않은 일에 웃어야 하는 것들이
날 외롭게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의 외로움은 그래도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학창시절에는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익숙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나가면
관계 역시 그렇게 계속 바뀌어가는 거니까.
대학에 들어가고, 조금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면
외로움이 조금 덜해질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우루루 20명, 30명이 인사와 통성명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과, 감성팔이와 영웅담과 게임들로 점철된
술자리를 열렬히 참석하며
그 시끌벅적한 청춘의 열기가 외로움을 없애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입학하고 한 두달 그런 떠들썩한 자리를 참석하고
한명 두명 떠들썩한 인사를 남기며 집으로 돌아갈 때,
결국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또다시 유난한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생각했었다. 나의 문제인가보다.
늘 바쁜 부모님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제대로 가져 본 적 없기에
집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외롭고,
시끌벅적함으로 외로움을 채워보려 하지만
근원적 해결이 안되는구나 생각했었다.
나름 어줍짢게 수강한 심리학 수업과
가족 모임과 가족 회의를 한다는 친구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나의 결론이었다.
유달리 발달한 나의 감수성과,
여러가지 상황이 외로움의 촉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결국 그렇게 외로움은 늘 함께 할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기 시작했었다.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느낄 틈을 주지 않을 만큼
몸과 머리를 바쁘게 움직이거나,
외로움이 다가와도 동요하지 않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예감.
그리고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신기하게도 나의 역할은 계속 바뀌어 갔다.
직장인이었다가, 결혼을 하게 됐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출산을 하게 됐다.
사실, 출산을 하고 나서 발견한 나의 모습은
또 한번의 놀라움을 주었다.
결혼을 해야 겠다는 당위성도,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없던 내가 어쩌다 '남들 하는 거 한번 저질러 보자'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되었는데,
신기하게 나에게 다른 이유 없이 안아달라고 우는 존재가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그저 신기로웠다.
밀당을 하지 않아도, 넘치게 사랑해도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아 역으로 내가 그동안 애정결핍은 아니었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나의 외로움은 해결되는 구나 했다.
그렇구나. 가족이구나. 그게 외로움의 근원이구나.
또 어설프게 스스로를 진단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아이 역시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며,
친구 속으로, 사회 속으로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거라고.
사실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그렇게 아이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나갈거라는 걸..
또한 아이의 세계는 나의 세계와 점점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난 시간과 마음에서 아이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게 되는 그 어느 날을
차근차근 대비해 나가야 한다는 걸
지금부터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걸,
차츰차츰 실감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육아휴직을 내고 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을 수도 있었고,
복직을 해서 다시 회사로 복귀하기도 했다.
육아휴직을 하던 시절은 아이와 붙어 있는 시간만큼
어른사람들과 만남을 할 수있는 기회가 적어져서 인지..
이상하게 어른사람들과의 대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기분이었다.
한정된 관계 속에 이루어진 생활에 '외로움'은 당연한 동반자였다.
그리고 걱정 속에 복직을 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른사람들과 의미 없는 대화들을 계속적으로 주고 받다보니
대화의 스킬은 늘어가는 것 같았지만,
알맹이 없는 껍질만 커져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의 역할과 생활은 계속 변해왔는데,
외로움은 어떠한 형태로든 대롱대롱 매달려
변이 바이러스처럼 변형된 형태로
계속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이를 먹어서인지,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의 머리 위,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평일 낮에 한가롭게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혼자 있는 사람, 삼삼오오 몰려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외로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
외로움에 둔감한 사람, 외로움보다 삶의 고난함이 먼저인 사람은 있겠지만
누구나 다 어느 순간 문득
외로움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그만큼 나이를 먹었고
지위와 나이의 갭이 직원들과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자신이 함께 있지 않는 것이 가장 직원들이 바라는 거라는 걸
알게 되어버린 '그들'에게도 외로움은 짙어질 것이고,
매주 새로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오늘 무사히 떙퇴근을 해서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직장인의 애환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일 '그들'에게도
외로움은 스며들것이며
결혼을 앞둔 연인들도, 결혼을 막 한 신혼부부들도
혼자 살아가겠다 결심한 그들에게도
외로움은 언제 어떤 모습이고 존재할 것이다.
사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외로움에 취약하다 말하는 것은
그들이 배우자와 친구들을 떠나보내는 상황 속에 놓여서가 아니라
시간에 쫓겨가며 에너지를 써야 할 무언가가 없어진
나이이기에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걸 아닐까.
어느 신문인가에서 선진국은 외로움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나라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취미생활, 동아리 활동, 일자리를 제공하고
시간을 바쁘게 쓸 수 있게 관리하는 국가.
결국, 외로움은 결혼을 하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많고,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서
해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에너지를 쏟을 무언가를 만들어서
내 삶을 잠식하지만 않게 관리해야하는 대상인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