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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Jun 14. 2023

매일매일 흔들리며 사는 인생이란..

별의별 일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뉴스를 봐도, 책을 봐도..

말도 안되는 일들도 많고, 사연 많은 사람도 참 많다. 

인생은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겪어내며 살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남의 일은 참 무심히 그럴 수 있지 라고 넘기면서, 

고민에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건 

나의 일, 혹은 나와 함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관한 

아주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는 그런 일인가보다. 




이제 겨우 7살. 첫째의 나이다. 

하지만 첫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7살이란 나이는 제법 커 보인다. 

이제 유치원과 같은 단체 생활도 

제법 익숙해졌고, 학원 등을 이용해도 무방한 

나이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와 함께 하는 생활이 아닌 

아이만의 생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늘어났으며, 

그들이 아이에게 하는 평가는 늘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된다. 


회사에 일이 아무리 바빠도,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는 늘 챙겨 받으며 

아이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라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 

물론, 유치원 선생님이기에 아이의 모든걸 좋게 이야기 해준다는 걸 알지만, 

아이의 집단 생활이, 아이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 

부디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를 애타게 바라는 부모가 된 것이다. 




주말이었다. 뜬금없는 피아노 선생님 전화가 왔다. 

미술이나 피아노와 같은 예술관련 학원들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대부분의 다른 전공을 한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학원들은 

'영업'적인 마인드를 갖춘 선생님들이 

다소 '순수'한 아이들을 상대하기에 너무 영악한 모습으로 

영업가의 마인드를 갖추고 있는 반면, 


유독 피아노나 미술과목의 경우, 

진정 예술을 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했음직한 

다소 '영업'적인 마인드가 떨어져 

'순수'한 아이들을 상대하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말하는 기술과 영업하는 기술이 한 없이 떨어져 

가뜩이나 예민한 학부모의 지갑을 닫게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스킬 떨어지는 선생님들이 눈에 띈다. 


그 분 역시 평소에도 영업하는 마인드보다는 피아노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한 분이라는 인상이 있었긴 하지만, 

그날의 통화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스케줄 변경을 위해 한 전화같았고, 그 외 아이에 대한 평가는 

아마 즉흥적으로 나온 멘트였던 것 같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의식하며 피아노를 친다는 말. 

경쟁심이 강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게 커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하고 싶어하고, 선생님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는 게 

크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삶의 기준이 되고 자신이 기준이 되지 못해서 

스트레스 받고 살아갈 수 있다는 멘트가 이어졌다. 


그래 뭐, 평상시 승부욕이 좀 있다고 생각했지만, 

승부욕이나 경쟁심 등이 어찌됐건 무언갈 하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면이 충분히 있건만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평가였을까. 


아이가 인사를 잘 안한다고 했다. 

인사를 하라고 해도 했다고 말하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분위기는 질색하는 

내성적인 아이의 성격상 

지나가는 말로 웅얼거리며 인사를 했거나 

고개 역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까닥했을 가능성이 높다. 


모르는 어른들이 말을 걸으면 한결같이 

피하거나 숨어버리던 아이였다. 


어릴 때는 어려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7살이 되고 학교 입학을 앞두면서 

'교사가 예뻐하는 학생'이 

인사 잘하는 학생이라는 유투브 등을 볼 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는데 


미래에는 소통을 잘하고, 인성이 좋은 아이가 

인정받는 세상이 올 거라는 멘트에 

우리 아이가 인사를 안하는 것이 

인성까지 갈 문제인가 싶어 

뭔가 빈정이 상하면서도 

다른 어른들의 눈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한없이 걱정이 되었다. 


전화를 끊고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아이를 바라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앞으로 

수많은 평가를 받게 될 텐데 

아니다 싶은 거에 흔들리지 말자고 해놓고 

결국 아이에게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인사는 꼭 해보자고 연거푸 말하기도 하고 말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확신이 있고, 분명히 안다면 왜 불안하겠는가. 

내가 보는 아이의 모습이 맞는지 잘 모르겠고, 

내가 키우는 방식이 맞는지 잘 모르겠고,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이를 도와주는 지 잘 모르겠고,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정보는 넘쳐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양육과 관련된 물건부터 

교육과 관련된 기관까지 

선택해야 하는 것들도 넘쳐난다. 


나 하나의 인생도 선택하며 감당하기 버거운데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기에 

어떤 성향인지 파악을 했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존재의 

인생에 내가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소신을 갖고 아이를 믿으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머리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끝도 없이 흔들리고, 

소신따윈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사람 하나 바보만들기 쉽다는 것. 

수많은 사람들과의 생활에서 익히 알고 있는 것 아니었는가. 

그만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도 없고, 

누구에게나 좋은 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으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이 

어떤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빛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나 역시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수다스러워지기도, 말이 없어지기도,

긴장하기도 편안해지기도 하면서 

유독 아이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일까. 


귀를 너무 닫고 사는것도, 너무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는 것도 

좋지 않음을 잘 알지만 

난 아마도 절대 객관화 할 수 없는 내 아이의 문제이기에 

앞으로도 이렇게 흔들렸다, 후회했다, 다짐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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