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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Aug 10. 2023

흔들리는 마음으로
너를 지킬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내아이를 언제나 믿어줄 수 있을까

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가 눈에 띈다. 

와우... 뭔가 비밀스러운 심정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는데..

기분이 참 좋다. 

상단 노출이 많이 된다는 게 ... 아이러니하지만 

기분 좋게 다가온다. 

비밀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작가의 서랍'에 쓰다가 바뻐서 묵혀두었던 글들을 살펴보다가.. 

최근 글과 비슷한 결의 글을 발견했다. 

내 아이에 대한 흔들림.. 2020년 쓴 글이었는데.. 

역시나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일상인가보다. 

같은 물결에 흔들리고, 또 생각하고, 또다시 흔들리며... 

그떄의 감정을 떠올리며 읽다 발행해본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를 보는 눈이 많이 생긴다.

집안에서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붙어있던

내 껌딱지는  

엄마의 시간을 확보해주기위해

그리고 세상에 나가는 첫걸음을 떼기 위해

어린이집에 가게된다.


처음 아이를 맡길때는

 모든 일상을, 하루 24시간을 공유하던 아이였기에

그저 짠하고 알수없는 미안함이 솟구쳤는데


 달 두 달 일년 이년 시간이 흐르다 보니

감정들이 무뎌지며, 

나름의 생존방식을 익히며 잘 적응하겠지

어쩌면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겠지 합리화시키곤 한다


어찌됐건 내가 없는 공간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할까

나와 함께 있을 때와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까

늘 궁금함이 남지만

아직은 표현이 서투른 아이에게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물음표 투성이이고

알림장에 남겨진 선생님의 글은 누구에게나 해당할 만한

보편적인 내용들이 많아

아이의 하루를 읽기 힘들 때도 많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아이가 장난감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다고

가지고 노는 걸 누가 가져가면

심하게 감정이 폭발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 몇 번은 소유욕이 생기고

자아가 생겨나는 이맘 때의 아이에게

있을 수 있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한 번은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오늘 재밌게 놀았어?"

"응"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냈어?"

"응"

"친구들이랑 싸우진 않았어?"

"........ 엄마 내 말 못들었어? 내가 안싸웠다고 했잖아.

근데 왜 또 물어봐?"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며 들은 선생님의 얘기가

마음에 못내 걸린 날이었다.

주변에 아이가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를 위해 굳이 엄마들과 관계를 맺는 게 성격상 맞지 않아

또래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알고 싶었나보다.

손잡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조심스레 물은 내 말에

돌아온 대답은

제법 당차고 도발적이었다.


어쩜 아이는 하원길에 선생님이 하는 얘기를

다는 이해 못해도

자신에 대한 얘기라 짐작하고 내심 서운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짜 사이좋게 놀았고

내 영역을 지켜달라 친구한테 한 것 뿐인데

왜 싸웠냐고 재차 묻는지 이해가 안될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말에 어떻게 훈육을 해야하나

조심스레 아이를 살피던 나에게

이런 아이의 반응은

살짝 아이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던 내 마음이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고,


네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똑부러지는 대답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내 신뢰를 테스트하는 

도입에 불과했다.


그날은 왠일인지 하원길에

원장선생님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나오셨다.

얘기인즉 아이가 만든 블럭에 다른 친구가 손을 댔고, 

이를 참지 못한 아이는 손톱으로 긁었으며

심지어 왜그랬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자기가 그런게 아니라고 거짓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듯, 굉장히 큰 범죄를 저지른 듯

설명하는 원장선생님 얘기에 머리가 멍해졌다.


내 아이는 정말 객관적 평가를 받아봐야 하는 아이인것일까.

이맘때 그럴수있다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그런 면이 있는것일까.

내가 눈 앞에서 보지 않은 일에 대해

어떻게 아이에게 잘잘못을 물을 수 있으며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바뀌는 담임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이 아이의 같은 특성은

활발함과 산만함으로 에너지가 넘침과 공격성으로 갈리기도 한다.


보여주는 부분이 엄청 중요한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하거나 상처를 남기는 일은

충분히 흠이 잡힐만한 일이기에

더욱더 조심하고 경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얌전하고 순한 아이에게 더 좋은 평가가 내려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가 두려웠다.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보는 육아이기에,

잘 모르는 분야이기에,

내 선택과 내 판단이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정적으로 그 날 이후 자꾸만 아이가

진짜로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아이처럼 느껴지기에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와 한 센터에서 놀이평가를 받아보기로 했다.

한시간 가량의 시간에

이 돈을 들여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해답을 얻을지도, 아니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이 맘때 다 이래요. 아무 문제없는 건강한 아이에요"

이 이야기였다.


센터에 가기전, 해야 하는 수많은 문항들에 답을 적어넣고

평가지도 완성했다.


 검사 당일은 센터의 전문가 관찰아래

약 10분가량 아이와 장난감 방에 들어가

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장난감으로 가득 찬 방이 그저 신기했을 따름이고

이것저것 만져보며

"우아 이것봐봐, 이것도 해보자"

하는 등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그리고 담당 전문가는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하고

엄마와 아빠만 방에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밖이었다.


우선, 잠시 혼자 있게 된 아이는

계속 엄마와 아빠 방을 기웃거렸다.

자기도 같이 들어가고 싶어했고,


"잠깐만 밖에서 놀고 있어. 금방 나갈거야"

라고 말을 해도

자기가 왜 그방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납득할 수 없어했다.


"어머님, 이 아이는 좋은 면도 참 많은 아이지만

어느 정도 공격적인 면도 있어요"

"아까 제가 잠깐 밖에 있으라고 했을 때

저한테 무서운 표정으로 보던거 못보셨죠?

그게 심해지면 폭력적이 될수도 있어요"


"네?"


"그리고 놀이를 지켜봤을 때

한 놀잇감을 오래 가지고 놀지 못하더라고요

이거 갖고 놀다가 금방 저거 가지고 놀고

놀이를 할 때 한 놀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해요"


"결론적으로, 놀이치료가 좀 필요한 아이에요"


"이 맘 때 아이들 다 그런거 아닌가요? 평균적인 아이들에 비교해서

놀이치료가 필요한 아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음.. 그렇죠. 제가 평균적인 이맘때 아이들을 고려해서

드리는 말씀이겠죠?"


"......"


놀이치료는 1회에 10만원, 12회를 해야 완성할 수 있었다.

즉 120만원이 필요한 치료.

1시간 가량 선생님과 함께 놀며 치료를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물론, 한번에 오케이 하기에 너무 큰 금액이었고,

무엇보다 아이를 아주 잠시 지켜봤고 ,

대부분 내가 작성한 설문지에 의해서

아이를 바라본 전문가의 말이라는 게

그다지 와닿지가 않았다.


장난감으로 가득 찬 방에 와서

한 놀잇감에 집중하며 놀 수가 있다고?

다시 못올곳이면 이것저것 보고 싶지 않나?


엄마아빠랑 같이 못있고 나가있으라고 하는데

웃으며 네 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고?

당연히 같이 있고 싶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이가 나 화났어 하는 걸 표현하는 건

당연한게 아닐까?

내가...... 내 자식이라고 ...무조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걸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물론 아동의 발달에 관해 훨씬 많은 공부를 한

전문가이겠지만,

그 이전에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센터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그냥 가세요"

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쪽에

마음이 더 기울었고,


누가 뭐라든 내 아이는 내가 지켜볼거야 라는 마음과.. 

아직은 어린 나이니 추후 얼마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을거야 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어린이집의 평가와 센터의 평가, 수많은 평가들을 겪으며 이 아이 역시 살아가겠지. 

내가 되고 싶은 엄마는 살아 나가기 힘든 세상 속에서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 

진심으로 마음을 알아주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과연 나는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이 아이의 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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