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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Nov 21. 2018

모쓰 번역 - 그 해의 메츠 이야기

스토리텔링 앱 모스에서 들은 찡한 야구 이야기를 2년 전에 번역해 보았는데 아까워서 한번 다시 올려본다.



메츠와 나와 그해의 이야기

1965년 여름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이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열심히 일만 하는 분들이었고 휴가란 우리 가족 사전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빨리 학기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심심해 죽을 거 같던 어느 날 오후, TV를 켰습니다. 뉴욕 메츠 경기가 하고 있더군요. 야구는 하나도 몰랐는데 보다보니 대충 알겠더라고요. 간단하네. 선수 9명, 9이닝, 3아웃이면 이닝 종료. 빨리 배웠어요. 게임이 끝날 무렵, 난 야구 경기의 규칙을 이해했고 모든 선수들의 이름을 외웠으며, 또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야구와 메츠에 완전히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해에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모든 게임을 봤어요. 또 아빠가 저와 제 동생을 야구장에 몇 번 데려가셨고 이듬해에 동생과 둘이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셰이 스타디엄에 갔답니다. 아버지가 구해주신 티켓을 꼭 끌어안고요. 알고 보니 티켓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어요. 왜냐, 메츠는 바닥을 박박 기는 팀이었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팀이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아무 상관없었어요. 사실 그렇게 형편없는 지도 몰랐답니다. 우리는 메츠 팬이고 행복했으니까요. 그리고 시즌이 끝나면, 슬펐습니다. 그런데 1967년에 월드시리즈라는 걸 아빠와 보고 있다가 알았답니다. 만약 우리 팀이 잘하면, 리그 1위를 한다면, 시즌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메츠가 월드 시리즈 가면 우리 갈 수 있어?

당연하지.

1968년에도 우리는 월드 시리즈를 보고 있었어요. 당연히 메츠는 못 끼었고요. 하지만 이번에도 아빠에게 물어봤어요.

아빠, 메츠가 월드 시리즈 가면 우리 갈 수 있어?

당연하지

아빠가 그렇게 장담한 것도 이해가 가지요. 그 해 메츠는 꼴찌를 했고 야구 좀 아는 사람들은 메츠가 조만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할 거라고, 아니 나갈 수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빠는 티켓을 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큰 소리 빵빵 친거였죠.

그러나, 여러분 중에 메츠팬이거나 야구를 보아온 분이 있다면 1969년에 무슨 일어났는지 아시겠죠?

우리의 메츠는 후반기에 놀라운 승률을 보이고 1위로 정규 시즌을 마치고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을 차지해 최강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볼티모어에서 두 경기를 치르고 1승 1패를 한 메츠는 이제 셰이 스타디엄에 오게 되었고, 3,4,5차전이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우리 집에 메츠 티켓 같은 건 없었습니다.

라디오를 들으니 티켓 값이 100달러가 넘고 티켓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더군요.

그래서 아빠에게 물었어요.

“아빠, 우리 월드 시리즈 갈 수 있어요?”

“그럼, 걱정 마라.”

화요일이 왔고, 화요일이 갔고, 메츠는 이겼습니다.

아빠에게 물었어요.

“아빠, 우리 월드 시리즈 갈 수 있어요?”

“그럼, 걱정 마라.”

그런데 이제 뉴욕 셰이 스타디엄에서 할 경기는 두 경기 밖에 안남은 거예요. 여기서 끝내던지, 볼티모어로 돌아가던지 여기 뉴욕에서는 못 보게 되는 겁니다.

수요일이 왔고, 우리는 TV를 봤고, 우리 없이 메츠는 이겼습니다.

수요일 밤에 물었어요.

“아빠, 우리 월드 시리즈 갈 수 있어요?”

“그럼, 걱정 마라.”

그리고 목요일 오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 있었습니다. 이제 포기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그때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더니 한 손에는 티켓 두 장을, 다른 손에는 자동차 키를 들고 우리에게 외쳤습니다. “티켓 구했어. 가자.”

저는 신나서 팔짝팔짝 뛰었고, 그 즉시 기겁했습니다. 한 시간 반의 기차시간을 생각하면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도 엄마 차에 올라서 가고 있는데 엄마는 기차역쪽으로 가질 않더군요. 동네에서만 살살 운전을 하고 고속도로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우리 어머님이 지금 우리를 데리고 야구장에 가고 있는 거였어요.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무사히 제 시간에 도착했고 그 다음 기억나는 건, 엄마가 주차장 직원과 옥신각신하고 있던 장면입니다.

우리 뒤에는 세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얼마든지 주차비를 낼 준비를 된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었고 결국 경찰관이 다가와 물었어요.

“무슨 일 있나요? 왜 그러시죠?”

우리와 실랑이를 벌이던 주차 직원이 대답했어요. “이 아주머니가 주차비를 안내려고 하세요.”

경찰관이 말했어요. “아주머니, 확실한 이유가 있으셔야 될 것 같은데.”

“우리는 세 명인데 티켓은 두 장이라고요. 그러니까 애들만 내려주고 난 그냥 가려고 그래요.”

“아주머니, 미쳤어요? 이 귀한 티켓이 있는데 애들만 보여준다고요? 나 같으면 나부터 들어가 볼텐데.”

이 분은 엄마에게 감동해서 주차비를 안 받았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게이트 가까운 곳에 주차를 했고, 내리자마자 경기장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중간에 국가가 나와서 저 앞에 있는 우리 자리를 보며 잠깐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면서요.

그리고 동생과 나는 게임의 첫 공이 뿌려지기 직전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머지는 역사입니다. 무슨 일 있었는지 아시죠? 메츠는 이겼고, 월드 시리즈 챔피언이 되었고 나는 거기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니까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요.

경기가 끝나고 7호선을 타고 환호하는 메츠팬들 사이에서 외야에서 뜯은 잔디를 기념품으로 가져와 가슴에 꼭 안고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생각났지요.

근데 이상하네. 우리 아빠는 무슨 수로 티켓을 구한 거지?

그리고 티켓은 구한다 치고, 운전도 잘 못하는 초보 드라이버 엄마가 어떻게 우리를 그곳까지 차로 데려 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직 어렸지만, 그래도 똑똑한 아이였던 나는 부모님이란 무슨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는 걸 알았어요. 자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고, 가끔 격려를 해주기도 하죠.

하지만 부모란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그리고 때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순간에 거기 지하철에 서서 나중에 내게 사랑하는 아이가 생긴다면 나도 그 날의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메츠 팬이고, 나는 믿습니다. (Mets가 워낙 승리를 못하다 보니 그래도 믿는다는, you gotta believe라는 문구가 있음)

그러나 그날 나는 또 하나를 믿게 되었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에게는

적어도 단 하루만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부모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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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우 칼럼 중

" 62년 창단한 메츠는 4년 연속 100패 이상을 당하는 수모를 당했지만 69년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의 우승을 일궈내면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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