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지역 문화센터에서 알게 된 그림 선생님이 인체 드로잉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몇 번 문자를 보내셨다. 저녁 6시나 7시부터 9시까지 하는 수업이라고 했고 나는 아이가 어려 저녁 시간을 내기 힘들다고 문자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 이야기가 충분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치 시간을 내려면 낼 수도 있는데 내가 핑계를 대는 것 같은. 물론 그랬을 수는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억지로 저녁에 시간을 만들어 그림을 배우고 싶을 정도로 절실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모임은 50대가 대부분이고 많으면 60대 초반인 주부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미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이를 키워놓은 분들, 어쩌면 대학생이나 성인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아기 엄마의 저녁 외출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낯설고 의아하게 여겨진다. 본인들도 껌딱지 같은 아이, 늦게 오는 남편, 내가 하루라도 없으면 엉망인 집안과 굶는 식구들 다 경험했으면서도 자유로움이 익숙해지면서 그날들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 버렸다. '맞아, 그때는 그렇지.'라고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젊은 엄마가 저녁에 옴짝달싹 못하는 사정을 듣고서도 공감과는 거리가 먼 무표정으로 "왜? 맡기고 나오면 되잖아? 초등학생이면 혼자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년이 흐르고 이제 나도 아이가 나를 찾기는커녕 밀어내고 한 두 끼 정도는 혼자 해결할 수도 있어 조금 늦는다고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며 주말과 저녁을 보다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유치원생이나 초등생을 키우는 친구들과 주말이나 저녁에 약속을 정하려 할 때 "왜? 안 돼? 남편에게 맡기고 와."라는 말이 불쑥 나오게 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이었으면서. 친구와 마음 편히 저녁 한 끼 먹으려면 아이를 한 시간 반 거리 시댁에 맡겨야 했으면서. 토요일이면 꼼짝없이 미술관이며 동물원을 가야 했고 아주 가끔 저녁에 친구들과 맥주라도 마시고 있다가 엄마 언제 오냐고 울먹이며 묻는 아이의 전화를 받았으면서.
내 주변에는 겉으로 밝지만 알고 보면 우울한 사람, 기질적으로 우울한 사람, 약을 몇 년째 복용하는 사람, 몇 년째 상담을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니 내 주변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낙관적인 사람마저도 우울하게 만드는 지도.
그들은 우울함을 표출한다. 누구한테 건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눈치다. 때로는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나도 단순히 우울감이나 우울증을 느낀 것이 아니라 약물 치료를 해야 하는 우울장애를 앓은 적이 있다. 약을 끊었다가 재발을 하기도 했다. 벚꽃이 지고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 5월의 토요일이었나.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이래선 무슨 일이 나겠다. 나 혼자 도저히 해결이 안 된다. 이 감정을 내가 제어할 수가 없다.' 고 결론 내어 독감 환자가 이비인후과에 가듯 병원에 갔고 몇 년간 약을 꼬박꼬박 먹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사막을 건너는 기분이었고 저녁 6시가 넘어 해가 뉘엿뉘엿 지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술을 마실 수 있어서. 내가 얼마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신세타령을 반복했는지 동생이 내 이야기를 듣다가 "언니 이야기 더 이상 못 듣겠다"라고 가버리려고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약은 먹지 않은지는 오래되었으나 우울증의 실체를 알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것은 최악이 아닌 상황과도 관련 없고, 예쁜 아이와도, 좋아하는 일과도, 쾌청한 날씨와도, 이 세상의 모든 재미있고 맛있는 것과도, 괜찮은 사람인 나와도 관계가 없다. 너는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끈적한 손길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우울해하는 이들을 만나면 과거의 내 감정을 끄집어내면서까지 깊이 위로를 못해주고 있다. 그 감정은 분명 체험했으나 많이 희미해졌다. 때론 저 젊고 예쁘고 똑똑하고 재능 넘치는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왜 그래? 네가 어때서? 너처럼 괜찮은 사람이 왜? 네 상황이 뭐가 나빠서? 뭐가 그렇게 심각해? 운동을 시작하지 그래?"
나는 잊은 걸까. 나는 지금 너무나 건강해져서 통증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한 가지 아는 건, 자책과 자학으로 점철되었던 시간은 날 아무 데도 데려가지 못했고 영차, 하고 기운 내서 일어나 뭔가 하던 날들이 추억이 되고 경력이 되고 더 높은 자존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매일 운동을 다니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금방 포기를 하고, 막무가내에 가까운 낙관주의를 갖고 '잘 되겠지.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말자. 오늘만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이것이 최선의 답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를 괴롭히지 않고 안정시켜 주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최근, 우울하다는 이를 앞에 두고 공감과 연민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살지 마. 시간이 아깝고 네가 아까워. 인생 별거 없어. 가볍게 살아."라고 공허하고 꼰대 같은 충고를 해주고 있는 걸까.
그런데 그런 말조차도 듣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내가 사막을 건널 동안 나에게 해주는 모든 말과 관심을 생수처럼 받아먹은 적이 있으니까. 정말 상처가 된 건 무관심이다.
참으로 찬란해야만 하는 대학 신입생 시절, 홀로 세상의 모든 고민을 안고 회색 인간으로 살고 있던 어느 날 햇살 같은 사람들이 웃으며 걷는 캠퍼스에서 나에게만 비처럼 쏟아지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때 약간 친하던 친구를 붙잡고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떡볶이 김밥 등을 파는 학교의 카페테리아에 앉았고 그 친구는 우유와 햄버거를 먹었다. 나는"학교 생활이 힘들어. 외로워.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어." 등등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야말로 아무 공감도 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우유와 햄버거를 천천히 먹었다. 그 친구는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학교 내 기독교 봉사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모든 과목 올 A를 받는 친구였고 대학 생활의 해답, 인간관계와 공부와 미래에 대한 해답, 인생의 해답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빨리 다음 수업에 가버렸다.
나도 우울하다는 친구에게 그들이 받고 싶은 위로를 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의 시간과 돈과 마음을 다 퍼주고 나서 어처구니없는 취급을 받은 적도 적지 않아서 이제 난 마음을 아낀다. 일일이 오지랖을 떨 에너지도 없고 내 갈길이 바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을 건널 동안 전화하면 받아준 동생과 친구들, 넌 괜찮다고 해준 말들,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고 날 칭찬하거나 나를 부럽다고 말해준 이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해도 그 사람들과 그 말이 내 곁에 있었다는 건 안다. 나를 이해는 못해도 좋아해 주고 아주 약간의 관심만 가져 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하루 분의 양식은 되었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서 그들의 설명되지 않은 내면을 설명하려고 시도라도 한다면, 그 앞에서 적어도 "뭐가 문제야?"라고 물으며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표현하고, 현명하건 아니건, 도움이 되었던 아니건, 뻔하건 그렇지 않건 몇 마디라도 해주고 지나갈까 한다. 현재의 내가 아무리 건강하고 명랑하고 세상 걱정 하나 없어 보이고, 때로 그렇게 살고 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