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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Jan 21. 2019

Writing Retreat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를 위해 썼던 원고인데 반복되는 주제의 글이라 빠졌다. 

번외편 ㅋㅋ 


작년 가을, 번역을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쓰는 시간을 갖겠다는 큰 결심을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시간은 3개월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마감 핑계를 대며 글 한 자 쓰지 않으면서 칼럼의 꼬투리를 잡고 책을 출간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있는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글, 너 뭔데 나를 이렇게 피해 다니니? 나랑 맞짱 함 뜨자. 이번에 너랑 나랑 단둘이 만나서 결딴을 낼 거야. 이판사판이다.” 아니 조금 더 교양 있는 말로 바꾸기로 하자. 나는 나만의 글쓰기 피정을 가질 참이었다.  

retreat 이란 후퇴하다, 도피하다의 뜻이지만 가톨릭의 피정(retreat)을 뜻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묵상과 기도를 하는 신자나 템플 스테이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미국에선 글쓰기 코치들이 권장하면서 오래전부터 글쓰기 피정(writing retreats)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프로 작가보다는 첫 소설이나 자서전이나 논픽션을 집필하려는 예비 작가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익숙한 집을 떠나 오직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자신을 넣는 것이다. “Creative Writing Retreats”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워크숍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지지부진한 장편 소설을 끝내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토지 문화관 같은 작가를 위한 문화 예술 창작 공간으로 짐을 싸 떠나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한적한 사찰로 들어가거나 “노트북을 들고 파리로” 떠나는 사치까지 부릴 수는 없지만 번역을 일시 중지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의 모든 시간과 여유를 내 것으로 만들 것이라 믿었다. <나쁜 페미니스트> 이후로 페미니즘 도서 붐이 불면서 일이 연달아 들어왔고 2년 남짓 숨차게 달려왔으니 이제 휴식을 취할 자격도 있다고 생각했다. 번역을 당분간 쉬겠다고 자랑하니 번역의 고통을 아는 주변 번역가들이 열렬히 축하해주었고 이제 나는 마감이라는 돌부리가 없는 푸른 초원에서 자유의 향기를 들이마시며 꽃길만 걸을 참이었다. 

그로부터 딱 일주일,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 친구와 한 시간 째 통화 중이었다. 

“불안해. 불안해 죽겠어. 번역을 대체 왜 거절했는지 모르겠어. 괜찮은 책도 있었거든? 마감 날짜를 여유 있게 받아놓고 글을 써도 되잖아. 번역만 안 하면 저절로 글이 써지냐고. 오히려 불안해서 더 글이 써지지 않아. 난 안 될 거야.”

단행본 집필 계약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 잡지에 보내는 원고도 없었다. 장편 소설 아이디어나 수년 동안 계획한 프로젝트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었다. 

생산적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며 알찬 하루를 보내던 내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단호하게 거절한 책을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로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전 같으면 작업 의뢰 메일이 올 때가 되었는데도 이상하게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매일 아침 메일에 빨간 숫자가 떠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열어보면 ‘당신에게 어울리는 넷플릭스 신작’ 소식이었다. 친절하기도 하지.   

견디다 못해 가장 최근 번역 원고를 보낸 출판사 편집자에게 혹시 일이 있으면 나부터 먼저 생각해달라는 “구걸 메일”도 보내보았다. 


그런데 나는 대체 왜 번역을 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도 단 일주일 만에 안절부절못하는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 걸음 떨어져서 왜 나는 번역을 하지 않으면 초조한가, 번역이란 내게 무엇인가를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글쓰기가 두려우니 가장 글쓰기와 가까운 번역을 하며 나를 위로한다. 사실은 내 글이 얼마나 형편없을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않도록 차단하고 남이 완성한 지적 활동을 따라가면서 아쉬움을 채운다. 

두 번째, 번역을 하지 않으면 세상천지 쓸모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다.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임신 기간과 육아 기간 1년 정도를 제외한 후 적더라도 쉼 없이 돈을 벌어왔다. 한 번도 고정적이거나 넉넉한 월급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야금야금 돈을 벌며 내 앞가림은 하면서 살아왔고, 번역은 나의 유일한 소득원이자 생산적인 활동이다. 물론 나는 주부이니 요리와 살림으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분야에서는 발전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을 오래전에 깨닫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잘하기로 다짐했다.  

세 번째, 이제는 몸에 딱 달라붙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루라도 밭일을 안 하면 몸이 근지러운 농부나 물질을 안 하면 답답한 해녀의 기분이 이럴까. 일요일도 두 시간만 생기면 카페로 달려갔었다. 하루에 두 세장이라도 진도를 나가야 저녁에 밥맛이 좋았다. 

네 번째, 불안이 나를 잠식한다.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을 모르고 가지를 뻗는 부정적인 생각들도 번역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상사이고 습관이고 친구이고 원수인 이 번역을 떼어내자마자 나는 황야에 홀로 서 있는 단독자가 되었고 불안감과 무력감이 엄습해 들어왔다.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내 사랑>은 제목이나 포스터와는 달리 지고지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모드라는 갈 곳 없는 장애 여성이 에버렛 루이스라는 괴팍한 남자에게 얹혀살면서 갖은 푸대접을 받으며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그림을 놓지 않는 이야기다. 

에버렛 루이스가 유난히 모드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고 박대하던 날, 비참한 심경에서 벗어날 길 없었던 모드는 굴욕을 꾹꾹 참아가면서도 손을 뒤로 감추고 손가락을 움직여 페인트를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그 페인트가 뭍은 손가락으로 벽에 그림을 그린다. 

모드가 가장 불안하고 절망적일 때 유일한 안식이 되어주었던 건 그림이었다.   

처음부터 모드 그림을 알아보고 후원해주었던 뉴욕 여성은 모드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어요."

"그림은 배울 수 없어요. 그냥 그려야죠."

"당신의 그 끊임없는 창작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전 다른 건 필요 없어요. 붓과 물감만 있으면 돼요.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떠올리면 되니 어디 가지 않아도 돼요.”


나는 왜 저렇게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창작으로 뛰어들지 못하는가. 나는 왜 자꾸 글은 쓰지 못하면서 작가가 된 상상이나 하고, 글은 쓰지 못한 욕구를 번역으로 채우려 하고 하는가. 

왜 이 건강한 신체와 남아도는 시간과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작업실까지 갖고도 글을 쓰지 못하는가. 


그 시절 나의 비밀 블로그이자 일기장을 보면 온통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하다는 말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 그 어떤 때보다 장문의 일기를 썼다. 

아침에 뭘 했고 점심에 몇 시간을 잤고,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고, 혼자 어디를 쏘다녔고, 하루 종일 본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감상을 자세히 길게도 적었다. 어떤 음악을 들었고 길에서 서서 어떤 생각을 했고 버스에서 무슨 이야기를 엿들었는지 상세하게 담겨 있다.  

그러면서 일기는 서서히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 바뀐다. 비 오는 날 한참 동안 걷고 들어온 날엔 나의 동네 산책과 제인 에어의 황야 걷기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오후에 단풍잎이 깔린 길을 걸으려다 작업실에 지갑을 놓고 와서 작업실에 다시 갔다 온 이야기를 쓰면서, 처음에는 시간을 낭비해서 화가 났지만 오면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감동했고 집으로 오다가 주홍색 노을 속에서 손톱만 한 초승달을 볼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때로는 계획이 어긋날 때 기대하지 않았던 색채와 풍경을 만나는 법이라고. 


그렇다.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모드가 불안할 때 물감에 손을 대고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이 불안할 때 나를 진정시켜줄 유일한 것, 글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는 몸을 서서히 만들고, 기어를 천천히 바꾸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불안에 떨던 시간, 아무것도 안 하던 시간, 후회하던 시간, 일기를 쓰던 시간, 무작정 걸어 다니던 시간, 그 모든 시간들이 내게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글쓰기 피정을 떠난 사람들이 Day 1부터 글을 썼을까? 선택을 후회하고, 방에 틀어 박혀 울기도 하고, 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괜히 빗자루를 들고 앞마당도 쓸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첫 문장을 떠올리고 머뭇거리며 노트를 여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결심이란 건 백날 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일상을 유지하면서 틈새 시간을 만들어 행동하라고 권유할 수도 있다. 그러다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내린 작은 결단은 결국 보답을 해주기도 한다. 제자리에서 웅크리고만 있던 사람을 단 5센티미터, 아니 10센티미터 정도 옮겨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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