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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Jun 04. 2021

막막한 워킹맘에서 기쁨 충만한 살림테라피스트까지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

명함 없는 세상에서 10년도 넘게 잘도 살았다. 일이 정체성의 거의 전부였던 내게 하는 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답답한 일이었다. ‘도대체 뭐하시는 분이세요?’라는 다소 의혹에 찬 질문도 숱하게 받았다.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대답으로 순간을 모면해 왔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조용히 대답하곤 했다.


 ‘그러게요. 저도 바로 그게 궁금하다니까요. 도대체 저는 뭐가 되려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

https://url.kr/3wvxoc


그러던 내가 드디어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흔히 아는 종이명함은 아니다. 이제 같은 질문을 받으면 명함을 건내는 수고 대신에 휴대폰 네이버 검색창에 ‘아난다캠퍼스’를 찍어준다. 검색되어 나온 ‘아난다캠퍼스’의 정체성은 무려 ‘명상센터’다. 그러니까 나는 명상센터의 대표인 셈이다. 새삼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떻게든 나 하나 잘 살아보자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에서 시작했던 여정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스승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둘째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아이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어찌해서 둘째까지 낳기는 낳았는데 이제 어쩌면 좋을지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나는 사는 듯 싶게 살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만난 순간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전율이 나를 찾아왔다.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이. 그리 살 수만 있다면 지옥이라도 가겠다.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때 내게 ‘사는 듯 싶게 산다’는 것의 이미지는 ‘명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로 계발해서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폼나고 멋진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스승을 만난 이후 나를 통과해갔던 모든 것들이 결국 '명상'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된 지도 8년이 가까워가던 무렵 우연히 참석했던 MBSR 명상 워크샵에서였다. 당시 만해도 명상은 평범한 세속인인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머나먼 세계의 그 무엇이라고 여기던 때였다. 어찌되었든 기왕 요가계에 몸을 담궜으니 요가랑 세트상품처럼 여겨지던 ‘명상’이 뭔지 알고는 있어야지 하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워크샵을 신청했다.


흔히 건포도 명상으로 알려져 있는 먹기 명상, 바디스캔 이완명상, 걷기 명상, 하타요가와 함께하는 움직임 명상 등 세션이 거듭되면서 명상의 본질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게 되자 자연스럽게 몸 안에서 나도 모르게 '아하'가 올라왔다. 결국 궁극의 자기계발은 변화경영일 수 밖에 없고, 변화경영은 '자기 내면의 변화와 혁명'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스승의 메시지가 요가를 비롯한 동양의 오랜 영적 전통에서 많은 스승들이 설파한 가르침과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이 쉰에 직장생활 때려치우고, 홀로 산티아고 길 순례길에 나섰다가 그 길 위에서 문득 고향 제주를 떠올렸다는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아하'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 만들리라' 결심하고 귀국해,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하고 걷는 길을 내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자꾸만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다. 스승과 함께 걸었던 나에게로 향하는 길을 그 길을 그리워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던 거다.


그렇지만 어떻게? 여전히 엄마 손이 간절한 어린 아가야들을 둘이나 돌보아야하는 평범한 엄마가 품기엔 너무나 야무진 열망이 분명해 보였다. 무엇보다 우선 아직 내 안의 그 길도 제대로 닦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내게 남겨진 길은 하나였다. 닥치고 묵묵히 제 앞가림에 충실할 것.


바로 그 앞가림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한 분의 스승과 자연을 만났다. 스승의 안내와 통역으로 생명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천변만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숲을 관통하는 본질은 바로 '살림'이었다. 그 모든 변화의 궁극적 목적은 살려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무수한 죽음마저도 오직 살기 위한 선택이었던 거다.


어떻게 모든 생명체가 이리도 한결같은 선택들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말할 수 없이 궁금해졌고, 표현을 달리 한 거듭되는 질문에 스승은 그것이 바로 생명을 세상에 낸 신의 프로그램, 즉 섭리이기 때문이라고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석연치가 않았다. 그렇다면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삶이 여전히 버겁기만 한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섭리마저도 비껴간 버려진 존재란 말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 못 되었단 말인가? 한 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던 생명체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여기서마저 또 무대 아래 구경꾼이 되어버린 스스로가 말할 수 없이 안스러웠다. 그들만의 리그를 쓸쓸히 바라보고 있는 영원한 이방인. 그때였다. 내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루지 못한 꿈이라면 개나 줘버리라고. 이제 제발 '누구처럼' 멋지게 살려고 들지 말고 그냥 생긴 그대로 살아보면 안 되겠니?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이제와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간단해. 지금까지 '위대해' 보이는 존재들에게 그리했듯이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거야. 귀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다른 누가 아닌 네 몸을 느끼는데 써보는 거지.


그렇게 가장 가까운 자연인 '몸'을 정성을 다해 살피고 돌보고 보듬어 가는 시간이 쌓여갔다. 난생 처음 어차피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자각한 이후였으니 도리없이 담담히 묵묵히. 그리고 너무나 선명하게 나 자신을 살려내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나는 이미 ‘명상센터’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첫 스승인 구본형 선생님의 안내로 읽기, 쓰기로 시작한 명상이 몸을 통해 온 삶으로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과정을 나누고 싶은 그 맘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과 나누겠다는 욕심은 '많이' 비워낸 듯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 그 길 위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랄 뿐.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는 과정을 통해 인연 닿아 발걸음이 겹치는 이들과 정성으로 교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덕분일 거다. 그것이 이 생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라는 것도.


이제야 우리의 목표는 '쥐가 되고 싶은 쥐'로 돌아가는 것라고 하셨던 스승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작고 소박한 행복의 길을 만들어가는 내 삶이 참 좋다. 그 삶의 길 위에 만난 존재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그러니 어찌 감사를 멈출 수 있을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세상에서 내 삶을 최고의 예술로 만들어 가는 것'이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가르침이자 명상의 본질임을 알아차리고 말았으니 어찌 내가 ‘명상’을 떠나 살 수 있겠는가? 어찌 쥐로 사는 기쁨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사막같은 삶에서 어쩔 줄 모르던 직장맘을 나로 살아가는 기쁨으로 충만한 살림테라피스트로 만들어준 10년을, 나는 이제 당당히 '삶을 바꾼 育我휴직'이라고 부르려 한다. 이제는 자신있게 '육아휴직'이라 쓰고 育我휴직이라 읽는 시간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초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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