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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Aug 04. 2021

‘비움', 결과보다 빛나는 과정

열망과 저항의 황금률을 익혀가는 수련

일주일 쉬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또 다시 해방감의 쓰나미를 맞이하리라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두 달 째에 접어들며 한동안 체증같은 묵직함이 도무지 가시지를 않았다.


버릴 책을 골라내는 작업이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물건들은 더더욱 애착이 갔다. 아무리 봐도 더 이상 버릴 것은 없어 보였다. 아니 그렇다고 우기고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남아있는 잡동사니 색출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피해 다니던 내 안의 불편함과 외나무 다리에서 딱 마주치고 말았다.


답답하게 왜 자꾸 망설여!
걍 다 버려!!
그렇게 꾸물거리는 사이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인생 끝나면 어쩔건데?
어떻게 책임 질 거냐구?


                                     vs


그래!! 다시는 쓸 일 없는 물건이라 치자?
하지만 아직은 다 쓸 만한데 무조건 내다 버린다구?
네 공간만 시원해지면 다야?
새 주인을 찾아주려는 노력 정도는 해봐야지.
네 볼 일 끝났다고 그리 내팽개치는 거,
그거 습관이야! 병이라고!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선 조급함을 내려놓고 서로를 주장하는 내 안의 두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일단 뜨거운 붉은 피에게 인연이 다한 물건들을 가차없이 고르게 한다.

2.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3. 베란다에 놓아두고 그 아이와 지구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처리법을 모색하는데 충분히 정성을 다한다.

4. 할 수 있는 모든 것(손질해 중고마켓 판매, 지인 나눔 등)을 했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은 아름다운 가게 등에 미련없이 비워낸다.


베란다에 쌓이는 물건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집은 정리 전보다 더 어수선해진 느낌까지 들었다. 이게 뭐야? 그냥 거기서 멈출 걸 그랬나? 아직 때가 아닌가? 또 괜한 짓을 했나? 별 생각이 다 올라올 즈음이었다. 마치 흔들리던 초점이 딱 맞은 사진처럼 입장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물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수로 해왔던 화장대를 보내고, 언젠가 폼 나게 입고 나가려고 준비해두었던 정장들을 보내고,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피어오르는 추억이 담긴 아이들 옷들을, 자꾸만 밀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매달리던 책들을 조금씩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 때 나를 찾아온 느낌은 해우소에서 쌓인 노폐물들을 흘려보낼 때와는 또 다른, 그러니까 잘 익은 과일이 똑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깔끔한 분리감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별에도 필요한 시간이 모두 다른 거구나!!! 아름다운 이별이 사랑의 완성이라면 내게 딱 좋은 타이밍을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센서는 나 자신 뿐이겠구나!! 몸의 신호를 감지해낼 수 있다면 무리해 서두를 이유도, 무작정 밀어낼 이유도 없겠구나. 비움이란 그렇게 내 안의 열망과 저항 사이에서 나를 위한 황금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겠구나. 그러니까 ‘비움'이란 그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더없이 소중한 선물인 거구나!


그 때였다. 지난 달 비움을 시작하면서 정리해 둔 ‘비움을 통해 만나고 싶은 집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움 가이드의 주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집을 통해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고 싶은 내 안의 선명한 열망을 만났던 기억. 아무리 아니고 싶어도 여전히 한참은 육아와 살림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시기이니 두 영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1. 뽀송뽀송 데일리 이불과 손님용 이불
2. 식구별로 1칸씩 컴팩트한 옷장
3. 장르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장
4. 쿠킹 클래스 가능한 주방
5. 요가 클래스 가능한 거실
6. 영상강의 촬영용 룸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것이 사실이었다. 공간이야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대체 무슨 수로 그 공간으로 세상을 초대할 수 있을지 머리로는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으니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가 또 실망으로 힘들어 질까 봐 슬쩍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 달을 보내며 뭔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정말로 이런 공간 속에서 살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 공간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더 짜릿한 건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어찌 되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물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쌓인 먼지와 찌든 때를 닦아내니 공간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연두빛 고운 속살로 피어나는 봄 새싹 같은 생명력에 희미해졌던 기억도 함께 살아났다.


잊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맞은 기쁨들이 많았었는데...이 공간을 마련하고 설레하던 시간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공간을 가꿔가던 시간들이 참 좋았었는데...언젠가부터 집이 나와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집에게 무관심하려고 애써가면서까지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 달 간 물건과 함께 내 안의 조급함과 불안도 함께 빠져나간 걸까? 어찌 된 영문인지 정말 오랜만에 진짜 집으로 돌아온 듯한 편안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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